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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우주는 급팽창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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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우주는 급팽창했노라!

2014.03.25 19:02

“태초의 우주 급팽창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 포착했다.”

 

지난 17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바이셉(BICEP)2 국제공동연구팀의 대표이자 이 센터 소속의 존 코박 박사가 이렇게 발표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빅뱅, 인플레이션, 우주배경복사, 중력파, 편광처럼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가 난무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연구팀의 이 업적이 노벨상 감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리 우주가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탄생한 지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는 급팽창을 겪었다. 많은 우주론학자들은 빅뱅이 남긴 빛인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면 인플레이션의 증거인 원시 중력파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국제공동연구팀은 남극에 있는 바이셉2 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원시 중력파의 흔적인 ‘원형 편광(B 모드)’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로 확증된다면, 연구팀이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은 대서특필을 할 정도로 중요한 업적이긴 하다. 우주의 미물인 인류가 거대한 우주의 비밀을 또 한 꺼풀 벗긴 것이니까.

 

남극에 설치된 바이셉2 망원경(전면). 연구팀은 바이셉2 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에서 인플레이션 때 생긴 중력파의 증거를 찾았다. - Steffen Richter, Harvard University 제공
남극에 설치된 바이셉2 망원경(전면). 연구팀은 바이셉2 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에서 인플레이션 때 생긴 중력파의 증거를 찾아냈다. - Steffen Richter, Harvard University 제공

 인플레이션을 아시나요?

경제에서는 통화량이 증가해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전반적으로 꾸준히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우주에서 인플레이션은 왜 필요했을까.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멀리 있는 은하들일수록 점점 더 빨리 멀어진다는 사실, 즉 우주 팽창을 발견했다. 우주 팽창이라는 영화를 뒤로 돌린다면, 태초에 모든 것이 한 점에 모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빅뱅의 순간이다.

 

우주가 빅뱅이라는 대폭발에서 시작됐다는 빅뱅우주론은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1964년 미국의 아르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빅뱅우주론의 강력한 증거인 우주배경복사를 우연히 발견했다. 빅뱅우주론에 따르면 우주 초기에는 물질과 빛이 엉켜 있다가 빅뱅이 일어난 지 38만 년쯤 뒤에 빛이 물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이때의 빛이 바로 우주배경복사이다. 당시 뜨거웠던 우주배경복사가 지금은 2.73K(켈빈온도, 영하 270.42℃)로 식은 상태이고 마이크로파로 발견된다.

 

빅뱅 이후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38만 년 뒤에 우주배경복사가 물질에서 탈출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생겨난 중력파는 우주배경복사에 흔적을 남겼다. - NASA 제공
빅뱅 이후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38만 년 뒤에 우주배경복사가 물질에서 탈출했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생겨난 중력파는 우주배경복사에 흔적을 남겼다. - NASA 제공

그런데 빅뱅우주론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지평선 문제(또는 인과성 문제)다. 약 138억 년 전에 탄생했던 우주에서 우주배경복사는 138억 광년쯤 떨어져 있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한쪽 끝과 그 정반대편은 276억 광년쯤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가장 빠른 빛조차 138억 년 동안 276억 광년을 움직일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어떤 수단으로도 내통할 수 없다. 하지만 왜 밤하늘에서는 정반대편의 우주배경복사가 서로 똑같아 보일까.

 

또 하나는 평탄성 문제다. 현재 우주는 매우 평탄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주 초기에 평탄함에서 조금만 벗어났다면 오랫동안 우주가 팽창하는 동안 이 차이는 급속하게 증폭되기 때문에 현재 우주는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이렇게 평탄하기 위해서 우주는 초기에 1060분의 1 오차로 평탄해야 한다. 왜 초기의 우주가 이 정도로 평탄했을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80년 미국의 앨런 구스가 인플레이션을 제안했다. 빅뱅 후 10-32초 지났을 때 우주는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이 인플레이션이라는 상태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때 나온 에너지가 우주를 1030배 이상 커지게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우주 전체는 초기에 아주 작았기 때문에 빛보다 빠르게 급팽창해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쉽게 퍼져갈 것이고, 콩알이 지구만큼 커질 때 표면을 보면 평탄해지듯이 초기에 우주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에 당연히 평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중력파 직접 검출한 것은 아냐

우주가 인플레이션으로 원자핵보다 작은 크기에서 축구공만큼 커졌다. 이 크기의 우주는 현재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보다 큰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모든 종류의 입자들과 미세 요동들을 발생시켰는데, 이때 중력파도 생겼다.

 

서울대 천문학과 이형목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중력파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어 전파되듯이 시공간에 중력의 변화가 생길 때 중력장의 흔들림, 즉 ‘시공간의 출렁임’이 전파된다. 인플레이션 때 시공간에 생긴 거대한 파문이 중력파의 형태로 우주에 전파되는데, 중력파는 공간을 밀쳐서 일그러뜨리고 이로 인한 특징이 38만년 뒤에 물질에서 탈출했던 우주배경복사에 각인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원시 중력파’는 우주배경복사에 ‘원형 편광’이란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이셉2 망원경에는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하는 볼로미터(에너지 측정 장치) 512개가 들어간 패널이 장착돼 있다. - Anthony Turner, JPL 제공
바이셉2 망원경에는 우주배경복사를 측정하는 볼로미터(에너지 측정 장치) 512개가 들어간 패널이 장착돼 있다. - Anthony Turner, JPL 제공

 국제공동연구팀이 우주배경복사에서 관측한 것은 인플레이션 때 나온 중력파에 영향을 받은 흔적인 ‘원형 편광(B 모드)’이다. 지구에서 햇빛은 대기에 의해 산란돼 편광을 일으키는데, 이 때문에 편광 선글라스를 쓰면 일부 햇빛을 막을 수 있다. 우주에서 우주배경복사도 물질이나 중력파에 의해 편광을 일으키고, 이런 편광 중에서 원형 편광이 중력파에 영향을 받은 흔적이란 뜻이다.

 

연구팀은 우주배경복사에서 발견한 B 모드 편광이 중력파의 독특한 특징이라며, 인플레이션 때 나온 중력파는 예상보다 매우 강했다고 설명했다. 즉 중력파를 직접 검출한 것은 아니지만, 태초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이때 원시 중력파가 생겨났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한 셈이다.

 

단순한 것이 진리!

미국 스탠퍼드대 우주론학자 안드레이 린데 박사는 바이셉2 관측자료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우주모형의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모형들 중에서 많은 것들이 탐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중력파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3차원 막(brane)이 주기적으로 충돌해 빅뱅이 일어난다는 순환우주론이 죽게 되고, 인플레이션을 액시온이라는 암흑물질과 함께 다루는 우주모형의 거의 대부분이 제외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 관측자료는 30년 전 린데 박사가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을 수정해 제시한 ‘혼돈 인플레이션’ 이론과 잘 들어맞는다. 이 결과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흥미롭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이번 발견성과에 대해 제시한 해설자료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이론 중에서 가장 단순한 모형이 관측값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으로 판명돼 과학의 일반적인 가정, 즉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 격언을 일깨워 줬다는 것이다.

 

전체 우주에서 곳곳에서 여러 우주가 태어나고 있는 상상도. 린데의 혼돈 인플레이션은 다중우주를 예측한다. - NGP, Moonrunner design 제공
전체 우주의 곳곳에서 여러 우주가 태어나고 있는 상상도. 린데의 혼돈 인플레이션은 다중우주를 예측한다. - NGP, Moonrunner design 제공

린데의 모형에서 일어나는 혼돈 인플레이션은 다중우주와 연결된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은 결코 완전히 끝나지 않으며, 전체 우주 곳곳에서 새로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아기 우주들이 잇달아 태어나는데, 우리 우주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 우주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부모 우주로부터 탄생해 한창 자라나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르며, 언젠가 아기 우주를 잉태할지도 모른다. 다중우주에서는 우주마다 밀도가 달라 운명이 다르고 물리법칙이 다르며 생명체의 존재 여부도 다르다.

 

우리는 우리 우주가 이런 탐구를 할 수 있는 생명체를 탄생시킬 정도로 미세 조정된 것(fine-tuning)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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