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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유전자치료도 편집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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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30일 18:00 프린트하기

  영화를 ‘편집의 예술’이라고 불러서인지 몰라도 아카데미상에는 편집상도 있다. 엄청난 촬영분량 가운데 대략 두 시간 분량을 선별하고 이를 배치하는 편집자의 능력에 따라 영화의 운명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편집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모처럼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한 출연자가 내심 ‘기대’를 갖고 이야기를 했는데 주위의 썰렁한 반응에 주눅이 들어 “이러다 통편집되겠네…”라고 망연자실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고 그 덕분에 앞의 재미없는 부분까지 ‘살아남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사실 편집권은 대단한 권한이어서 사회생활도 결국 편집권을 쟁취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 아닌가 한다. 신입사원 선발에서 조직의 자리를 재배치하는 인사, 심지어 정리해고(일종의 통편집이다)까지 편집하는 입장이냐 편집당하는 처지냐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기껏 고생해 만든 보고서도 상사의 구미에 맞게 편집돼 당사자의 취지가 무색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한 신문에서 SNS의 폐해를 기획기사로 다룰 정도로 사람들이 ‘SNS앓이’를 하는 것도 어찌 보면 편집권에 대한 열망 아닐까(물론 필자 본인의 생각일 뿐이다). 내 콘텐츠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즉 편집당하지 않고) 그대로 가상의 무대로 내보내 사람들의 평가 또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 말이다. SNS 공간은 편집권 ‘민주화’의 장인 셈이다.

 

●잘못된 유전체 편집의 결과, 유전병

생식세포(난자 또는 정자)를 만드는 감수분열이 일어날 때 먼저 게놈 복제 된 뒤(4n) 반수체(n) 세포 네 개로 갈라진다. 이 과정에서 염색체재조합이 일어난다. 23종 염색체 모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므로 같은 부모에게서도 외모와 성격이 전혀 다른 형제가 나올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생식세포(난자 또는 정자)를 만드는 감수분열이 일어날 때 먼저 게놈 복제 된 뒤(4n) 반수체(n) 세포 네 개로 갈라진다. 이 과정에서 염색체재조합이 일어난다. 23종 염색체 모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므로 같은 부모에게서도 외모와 성격이 전혀 다른 형제가 나올 수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숙명적으로 편집을 당하는 존재다. 부모는 각각 23개 염색체 두 쌍을 갖고 있는데, 생식세포를 만드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절반(엄밀하게 말하면 먼저 게놈 복제가 이뤄지므로 4분의 1)만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는데 매 장면마다 촬영 버전이 두 개씩 있어 총 네 시간 분량인 셈이다. 감수분열 과정에서 각각의 염색체 마다 둘 중 하나가 선택되는데(따라서 이것만으로도 나오는 조합(편집의 수)은 2의 23승 가지나 된다), 여기에 상동 염색체끼리 염색체 일부를 교환하는 ‘재조합’까지 일어나므로 실제 경우의 수는 훨씬 더 크다.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생김새는 물론 성격도 판이한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편집의 힘이다. 운이 좋아 편집이 잘 된 유전체를 받으면 남과 비슷하게 먹고 자도 외모도 준수하고 오래 사는 반면 안 좋은 조합이면 사는 게 고생이다.

 

  예를 들어 19번 염색체에는 APOE라는 유전자가 있는데 2, 3, 4 이렇게 세 변이가 있다. 그런데 APOE4 변이를 하나 갖고 있으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이 네 배가 된다. 만일 둘 다 APOE4이면? 무려 12배가 된다. 부모가 하나씩 갖고 있을 경우(따라서 이들도 이미 위험성이 네 배다) 내가 둘 다를 받게 편집될 확률은 (무작위일 경우) 25%다. 오죽했으면 2007년 제임스 왓슨이 자신의 게놈을 해독해 공개할 때 APOE 유전자만은 빼는 조건이었고 자신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둘 다 APOE4인 걸로 나오면 여생을 치매 공포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기까지는 그래도 확률이므로 희망은 있지만 어떤 유전자의 변이형은 100%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를 유전병이라고 부른다. 색맹, 혈우병 등 여러 유전병이 존재하고 이 가운데 다수가 치료제가 없다. 치료가 안 되는 경우도 있고 희귀병이라 제약사들이 (돈이 안 되는) 치료제 개발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유전병을 원천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바로 유전자치료(gene therapy)다. 엉망으로 편집된 유전자를 받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편집된 유전자를 넣어 병을 고친다는 ‘이상적인’ 치료법으로 1972년 개념이 소개됐다.

 

  그리고 불과 18년 뒤인 1990년 미 국립보건원(NIH)은 ADA결핍 중증복합성면역결핍증(ADA-SCID)이라는 유전병을 앓고 있는 아샨티 데실바라는 4살짜리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첫 유전자치료를 실시했다. ADA라는 유전자가 고장나 면역세포인 T세포를 만들지 못해 면역력이 취약해지는 이 병은 평생 무균실에서 지내는 게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치료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고 데실바라는 그 뒤로도 인공 ADA를 공급받기는 하지만 아직 생존해 있다.

 

  그러나 1999년 유전자 결함으로 암모니아를 제대로 대사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제시 겔싱어라는 18살 소년이 유전자치료를 받은 뒤 급격한 면역반응으로 4일만에 죽는 사고가 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 사건으로 유전자치료 연구는 크게 위축됐지만 다시 전열을 재정비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유전자치료 임상이 늘면서 현재 1700여명이 임상을 받았거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유전자 추가 vs. 유전자 수리

 

  학술지 ‘네이처’ 6월 12일자에는 X염색체상의 유전자 변이로 인한 중증복합성면역결핍증(SCID-X1)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치료법이 소개됐다. 사실 이 질환에 대한 유전자치료법은 이미 2000년대 성공이 보고됐지만 이번엔 그 방법이 다르다. 즉 기존의 방법은 고장난 유전자는 그냥 놔두고 정상 유전자를 집어넣어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방법은 고장난 유전자 자체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해 병을 고치는 방법이다. 즉 잘못 편집된 걸 다시 제대로 편집하는 과정이다.

 

2009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자들은 유전자 결함으로 색맹인 원숭이에게 원추세포유전자를 넣어줘(유전자 추가 방법) 컬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유전자치료의 가장 유명한 예다. - Neitz Laboratory 제공
2009년 미국 워싱턴대 연구자들은 유전자 결함으로 색맹인 원숭이에게 원추세포유전자를 넣어줘(유전자 추가 방법) 컬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유전자치료의 가장 유명한 예다. - Neitz Laboratory 제공

  먼저 ‘유전자 추가’라고 할 수 있는 기존 방법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바이러스 가운데는 감기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바이러스처럼 사람에 감염한 뒤 세포 안에서 그냥 증식하는 녀석도 있는 반면 헤르페스바이러스처럼 일단 바이러스 게놈이 인간 게놈 안으로 끼어들어 간 뒤 기회를 봐서(즉 인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하는 종류도 있다. 실제로 인간 게놈의 약 8%는 이렇게 들어온 바이러스 게놈의 ‘화석’이라고 한다. 유전자 추가는 후자의 패턴을 보이는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이용한다.

 

  즉 게놈에 정상 유전자를 넣은 레트로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를 세포에 감염시키면 바이러스 게놈이 사람 게놈으로 끼어들어가고 정상 유전자가 발현하면서 정상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나름 문제점도 있다. 즉 바이러스 게놈이 어디로 끼어들어갈 지 모르기 때문에 자칫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유전자 중간에 끼어들어가 그 유전자를 망가뜨릴 수도 있고 발암유전자 옆에 들어가 이 유전자 발현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잘못된 만남’을 스크린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깔끔한 방법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논문에 실린 새로운 방법, 즉 ‘유전자 수리’는 좀 까다롭기는 해도 잘만 되면 비정상 게놈을 깜쪽같이 정상게놈으로 만들어준다. 유전체편집(genome editing, 국내 학계에서는 ‘유전체교정’이라고 번역하는 것 같다)이라는 이 기술은 게놈의 특정 부위를 찾아가 자르는 소위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문제가 있는 유전자 부분을 정상으로 바꿔치기 한다.

 

  1990년대 처음 소개된 1세대 유전자가위 ZFN은 DNA의 특정 염기서열에 달라붙는 아연집게단백질(zinc finger protein)에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에서 DNA가닥을 자르는 활성을 띠는 부분을 붙인 합성단백질이다. 즉 ZFN의 아연집게가 게놈에서 고장난 유전자가 있는 부분을 찾아가 빨래집게처럼 집고 있는 동안 제한효소 부분이 가닥을 댕강 자른다. 그러면 세포의 복구 시스템이 작동해 잘린 부분을 다시 이어주는데, 이때 그 부분과 비슷한 염기서열이 주변에 있으면(ZFN과 함께 넣어준 정상 DNA가닥) 이를 참조해 복구하면서 원래 서열의 잘못된 부분이 고쳐지는 것이다.

 

  꽤 복잡해 보이지만 이미 성공한 사례가 여럿 있다. 참고로 이번 ‘네이처’ 논문은 이 기법 자체보다는 이 시스템을 사람의 조혈줄기세포(haematopoietic stem cell)에 넣어주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조혈줄기세포가 외부 물질을 잘 받아들이지 않아 그동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생화학분자생물학회 소식’ 6월호에 ‘유전체교정 기법의 민주화’란 제목의 리뷰논문을 발표했다. ‘자연과학 논문에 웬 민주화?’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 바로 편집권의 민주화를 말한다.

 

  즉 유전자가위 1세대인 ZFN과 2세대인 TALEN(탈렌,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기본 원리는 ZFN과 비슷하다)은 다루기가 까다로워 노하우가 있는 소수의 생명과학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 지난해 1월 논문 다섯 편이 동시에 실리며 화려하게 등장한 3세대 유전자가위 RGEN(알젠)은 생명과학자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즉 이 리뷰논문은 RGEN의 작동원리와 응용, 전망을 다루고 있다.

 

 

유전자 치료의 두 가지 방법을 도식적으로 비교했다. 왼쪽은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유전자 추가’ 방법으로 레트로바이러스에 정상 유전자를 넣어준 뒤 변이유전자가 있는 줄기세포에 넣어주면 정상유전자가 게놈에 끼어들어가면서 정상유전자의 산물(대부분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오른쪽은 최근 연구가 활발한 ‘유전자 수리’ 방법으로 정상유전자를 실은 바이러스와 함께 유전자가위(engineered nuclease)를 함께 넣어 변이유전자를 고쳐 정상세포를 만들어 병을 치유한다. 유전자 추가에 비해 복잡한 과정이지만 지난해 3세대 유전자가위가 개발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쓸 수 있게 됐다. - 네이처 제공
유전자 치료의 두 가지 방법을 도식적으로 비교했다. 왼쪽은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유전자 추가’ 방법으로 레트로바이러스에 정상 유전자를 넣어준 뒤 변이유전자가 있는 줄기세포에 넣어주면 정상유전자가 게놈에 끼어들어가면서 정상유전자의 산물(대부분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오른쪽은 최근 연구가 활발한 ‘유전자 수리’ 방법으로 정상유전자를 실은 바이러스와 함께 유전자가위(engineered nuclease)를 함께 넣어 변이유전자를 고쳐 정상세포를 만들어 병을 치유한다. 유전자 추가에 비해 복잡한 과정이지만 지난해 3세대 유전자가위가 개발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쓸 수 있게 됐다. - 네이처 제공

  RGEN은 단백질과 RNA의 복합체로 1세대, 2세대 유전자가위와 다른 점은 단백질이 아니라 RNA 가닥이 타깃이 되는 게놈 위치를 찾는다는 것. 즉 염기 20여개 길이의 RNA서열만 바꿔주면 원하는 자리에서 ‘게놈편집’을 할 수 있다. 반면 ZFN과 TALEN은 단백질이 게놈 서열을 인식하므로 원하는 위치에 가려면 아미노산 서열을 바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바꿔야하므로 상당히 복잡한 작업이다.

 

  물론 유전자가위 자체도 실제는 이론과 달리 여러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 즉 엉뚱한 자리에 가서 DNA가닥을 자르기도 하고 모든 임의의 염기서열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러 일이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면 개선 또는 혁신의 속도를 빨라지게 마련이다.

 

  저자들도 논문 말미에서 “RGEN이 개발된지 불과 1년이 지난 현재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새로운 연구결과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쓰고 있다. ‘유전자 추가’가 됐든 ‘유전자 수리’가 됐든 잘못 편집된 유전자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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