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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술은 정말 숙취해소 효과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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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술은 정말 숙취해소 효과가 있을까

2014.12.15 18:00

일상의 과학을 소재로 할 경우 필자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우는 쓰기가 망설여진다. 경험을 했더라도 너무 오래 돼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역시 자신이 없다. 오늘 주제인 숙취가 바로 그런 경우로 필자가 마지막으로 술에 취한 게 10년도 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심신이 쇠약해져 사실상 술을 끊게 된 뒤 가끔 모임에서 한두 잔 마시는 정도다.

 

물론 지금이라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주 한두 병을 마시면 다음날 아침 바로 숙취를 경험하겠지만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설사 그렇게 해 숙취를 생생하게 묘사하더라도 어차피 술을 안 마셔 숙취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감이 오지 않을 것이고, 지금처럼 대충 써도 숙취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기억에 과음을 한 뒤 잠에서 깨어날 때 제일 괴로운 건 두통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해 관자놀이의 맥박이 뛰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여기에 속도 메스꺼워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나마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고통이 덜 해 숙취가 심할 땐 회사에 전화를 해 휴가를 내기도 했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유발물질?

 

지난 봄 학술지 ‘네이처’를 뒤적거리다 신간소개란에서 표지가 눈에 확 띠는 책을 봤다. 위스키온더락(whisky on the rocks)이 술잔이 아니라 삼각플라스크에 담겨져 있는 사진이다. 한눈에 술의 과학을 다룬 책임을 직감했다. 그런데 책 제목이 ‘Proof’로 좀 추상적이다. ‘증명이라...’ 부제는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the science of booze, 부즈가 뭐야?’

 

 

효모에서 숙취까지 술에 관련된 모든 현상을 과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 ‘프루프’. 아마존의 ‘편집자가 뽑은 2014년 책’ 과학부문에서 6위로 뽑혔다. - 강석기 제공
효모에서 숙취까지 술에 관련된 모든 현상을 과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 ‘프루프’. 아마존의 ‘편집자가 뽑은 2014년 책’ 과학부문에서 6위로 뽑혔다. - 강석기 제공

찾아보니 프루프에는 술의 도수라는 뜻도 있다. 즉 중의적인 제목이다. 이 경우 우리가 익숙한 도수(술 100밀리리터(㎖)에 들어있는 알코올의 밀리리터 양)는 아니고 200을 만점으로 한 도수다. 즉 20도 소주를 프루프로 하면 40이라는 말이다. 예전에 ‘100도가 넘는 독한 술’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이 경우가 프루프다. 한편 부즈는 술의 속어다. 아무튼 술의 과학을 다룬 책은 맞기에 서평을 읽어보니 꽤 좋게 평가하고 있어 바로 주문했다.

 

저자 아담 로저스(Adam Rogers)는 미국의 유명 과학기술 월간지인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자이자 ‘뉴스위크’ 같은 곳에 기고하는 과학저술가로 위스키 한 잔을 놓고 바에 앉아있는 저자 사진을 보니 한 눈에 술꾼임을 알 수 있다. 저자 역시도 책에서 인정하며 자신은 술 가운데 위스키를 제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문득 필자가 기자를 막 시작할 무렵 이차 삼차 이 술집 저 술집으로 자정이 넘도록 후배들을 끌고 다니던 한 선배 기자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책까지 술 취한 상태에서 대충 쓴 것 같지는 않다. 구성이 꽤 짜임새 있고 발품을 팔아 폭 넓은 취재를 했고 작가답게 흥미진진하게 썼다. 서론에 이어 여덟 개 장이 주제별로 전개된다. 즉 1장 효모, 2장 당(糖), 3장 발효, 4장 증류, 5장 숙성, 6장 맛과 향, 7장 몸과 뇌다. 그리고 8장이 바로 숙취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필자는 숙취의 과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알코올(에탄올)의 첫 번째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에 남아 있어 생기는 현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8장 시작부터 필자의 어설픈 상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실망스럽게도 “아직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가 오늘날 숙취의 과학의 현주소라고 한다. 미국에서만 숙취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1600억 달러(약 170조 원)라고 하지만 생명과학/의학 문헌 데이터베이스인 퍼브메드(PubMed)를 보면 지난 50년 동안 알코올(술)을 주제로 한 연구 65만8610건 가운데 숙취 연구는 0.1%도 안 되는 406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소수의 과학자들이 숙취를 연구했고 그 결과 몇 가지 사실들이 밝혀졌다. 먼저 숙취 증상이 가장 심할 때는 음주 후 12~14시간 뒤로 보통 다음날 아침에서 점심 사이에 해당한다. 자정 넘게 과음한 사람은 본인뿐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도 휴가를 내는 게 바람직한 이유다. 흥미롭게도 숙취가 최악일 때 혈중알코올농도는 0에 가깝다. 숙취의 진전과 관련된 이런 패턴은 아세트알데히드도 비슷하다. 즉 숙취가 가장 심할 때는 이미 농도가 꽤 낮아진 상태라는 것. 물론 아세트알데히드의 효과가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해석할 여지는 있다.

 

알코올은 이뇨를 촉진하기 때문에 결국 탈수 효과가 있는데 그 결과 숙취가 생긴다는 설명도 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이온음료를 마셔도 숙취증상개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혈당이 떨어지는 게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한다(TV드라마에서 술 마신 다음날 일어나면 엄마 또는 아내가 꿀물을 타 갖다 주는 장면을 여러 번 봤지만 필자는 경험이 없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마신다며 혼만 났다).

 

●숙취는 일종의 염증반응

 

뜻밖에도 현재 숙취의 원인으로 가장 그럴듯하게 여기는 이론이 염증반응가설이라고 한다. 즉 병균에 감염됐을 때 우리 몸이 보이는 증상과 숙취가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보니 몸살을 앓을 때 증상이 숙취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즉 숙취 상태에서는 우리 몸의 면역관련 신호물질인 사이토카인(cytokines)의 수치가 병균에 감염됐을 때와 비슷하게 바뀐다는 것.

 

흥미롭게도 바로 우리나라 과학자들(카톨릭대 의대 등)이 이런 연구를 해 2003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이 과음으로 숙취 상태가 되면 인터류킨10, 인터류킨12, 인터페론감마 같은 사이토카인의 수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한편 건강한 사람들에게 이런 사이토카인을 주사하면 숙취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또 기억력도 떨어지는데 역시 과음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편 편두통과 숙취도 증상이 겹치는 면이 있다. 편두통 발생은 염증반응관련 생체분자인 프로스타글란딘의 농도가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프로스타글란딘의 작용을 억제하는, 항염증 약물인 톨페남산이 편두통 약으로 처방된다. 1980년대 핀란드 과학자들은 머리가 아프다는 공통점에 착안해 과음한 사람들에게 톨페남산을 복용시킨 결과 상당한 효과를 봤다는 결과를 얻었다. 부채선인장(prickly pear cactus) 껍질 추출물도 두통과 메슥거림, 피로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역시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한다고 한다. 따라서 톨페남산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숙취완화 효과가 있다고.

 

 

부채선인장 추출물은 두통과 메슥거림, 피로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숙취완화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부채선인장 추출물은 두통과 메슥거림, 피로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프로스타글란딘의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숙취완화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뒤끝이 없기는 보드카가 최고?

 

한편 섭취한 알코올의 양이 숙취의 유무나 정도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예전에 동동주는 마실 때는 좋지만 뒤끝이 안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 주종에 따라 숙취에 미치는 영향이 제각각이라고 한다. 즉 술에는 물과 알코올 말고도 다양한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가운데는 숙취를 줄여주는 물질도 있고 심하게 하는 물질도 있다는 것. 다만 대체로 숙취를 악화시킨다고 한다. 따라서 되도록 물과 알코올의 순수한 혼합물에 가까운 술이 그나마 숙취가 덜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수가 비슷한 보드카와 버번위스키(옥수수와 호밀로 만든 미국 위스키)를 비교해보면 보드카는 불순물이 37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숙취의 정도는 단순히 알코올 섭취량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술에 들어있는 불순문도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과 알코올의 순수한 혼합물에 가까운 보드카는 상대적으로 숙취가 덜한 술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숙취의 정도는 단순히 알코올 섭취량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술에 들어있는 불순문도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과 알코올의 순수한 혼합물에 가까운 보드카는 상대적으로 숙취가 덜한 술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실제 보드카가 숙취가 덜하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있는데 연구결과 정말 그런 것으로 나왔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연구에 따르면 숙취가 덜한 술은 맥주와 보드카이고 위스키, 와인, 특히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는 숙취가 심한 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양의 알코올이 있도록 한 잔의 양을 맞춰 실험해보면 맥주 14잔을 마셨을 때 숙취 정도는 와인이나 리큐르(증류주에 과실이나 향신료를 넣은 술) 7~8잔을 마셨을 때와 비슷하다고. 소주는 연구에 포함돼 있지 않았는데, 겉모습(물탄 보드카)만 봐서는 숙취가 덜 한 쪽일 것 같지만 인공감미료 등 첨가물이 들어있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술의 불순물 가운데 가장 안 좋은 게 바로 에탄올의 동생뻘인 메탄올이라고 한다.

 

●메탄올 대사물이 세포 질식시켜

 

아랍권처럼 술을 금하는 나라나 가난한 나라에서 에탄올인줄 알고 물에 타 마셨는데 알고 보니 메탄올이어서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경우도 실명했다는 외신을 몇 번 접한 기억이 있다. 분자구조를 보면 메탄올은 물과 에탄올 사이라고 할 수 있는데(물 H-OH, 메탄올 CH3-OH, 에탄올 CH3-CH2-OH) 그 작용은 에탄올보다 훨씬 악질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술을 마신 경우에도 메탄올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숙취의 상당 부분도 메탄올이 난동을 부린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효모가 과일이나 곡물로 알코올 발효를 하다보면 에탄올뿐 아니라 메탄올도 미량 만든다. 따라서 모든 술에는 메탄올이 약간 들어있기 마련이다(물과 에탄올의 혼합물인 술에서 둘 사이의 물리화학적 특징을 띠는 메탄올을 제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증류주의 경우 증류 조건을 잘못 맞추면 메탄올의 상대적인 농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아무튼 술을 마시면 메탄올도 에탄올처럼 먼저 알데히드로 대사되는데 이렇게 나온 포름알데히드가 몸에 보통 해로운 게 아니다. 게다가 포름알데히드가 대사된 포름산은 더 무시무시한 분자다. 개미가 적을 공격하기 위해 내뿜는 개미산이 바로 포름산이다. 포름산은 세포호흡에 필요한 시토크롬산화효소라는 효소의 작용을 방해한다. 그 결과 세포들은 일종의 질식상태가 되는데, 평소 산소 소모가 가장 활발한 눈이 먼저 손상된다. 즉 메탄올을 과도하게 섭취했을 경우 실명이 되고 그 선을 넘으면 사망에 이른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겐 안 된 게 차라리 메탄올이 대사가 되지 않으면 혈액에 녹아 있다가 날숨이나 소변을 통해 빠져나갈 텐데 에탄올을 대사하는 효소들이 효율은 떨어지지만 메탄올도 처리한다. 흥미롭게도 메탄올 과다 섭취에 대한 응급처치가 바로 술을 먹이는 것이다. 즉 몸에 에탄올이 들어오면 효소가 메탄올을 제쳐두고 에탄올을 먼저 처리하기 때문에 포름알데히드가 덜 만들어지고 따라서 포름산 농도도 낮아진다.

 

일부 과학자들은 메탄올이 숙취와도 관련이 있다며 이런 맥락에서 해장술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서구에도 우리처럼 해장술(영어로 hair of the dog)이라는 말이 있다. 즉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꾼들은 과음한 다음날 아침 술 한잔 걸치면 오히려 숙취가 덜해진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책에 따르면 해장술이 작용하는 이유가 바로 메탄올 대사를 억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과음을 하면 효소들이 에탄올을 먼저 대사시키므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본격적으로 메탄올이 대사되면서 숙취 증상이 나오는데, 이때 소량의 술을 마시면 다시 에탄올을 대사시키게 되므로 메탄올의 대사가 억제돼 포름알데히드와 포름산이 덜 나온다는 것(시간이 지연될수록 메탄올이 그냥 배출되는 비율이 늘어난다). 

 

●숙취가 심한 게 차라리 낫다?

 

저자는 술꾼답게 숙취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약물을 직접 실험해보기 위해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갖고 있던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를 풀어 진탕 마신 뒤 각자 종류별로 복용했는데 다음날 평소보다 훨씬 심한 숙취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술 저 술 엄청난 양을 마셨기 때문이다. 설사 숙취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약물이 있더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책에는 필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있는데, 술 마시는 사람 가운데 23%가 숙취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인들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도 그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꽤 된다는 게 놀랍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액면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아무튼 술이 센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숙취와 알코올 중독은 반비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숙취가 심한 사람일수록 알코올중독에 빠질 위험성은 낮다고. 워낙 고통스럽다보니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성을 간다’며 결심을 하고 학습효과가 며칠은 가기 때문이다. 반면 과음 다음날에도 별 탈이 없는 사람들은 연달아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새 중독이 된다는 것.

 

2005년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한 리뷰논문은 숙취 연구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숙취를 예방하거나 없애는 민간요법 가운데 정말 효과가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숙취를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음주를 자제하는 것이다.” 정말 하나마나한 얘기다.

 

PS. 최근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은 ‘편집자가 뽑은 2014년 책’ 과학부문에서 ‘프루프’를 6위에 올렸다. 편집자들이 술꾼들이라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뽑아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짝 든다(사실 잘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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