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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속의 ‘잠자는 개’를 깨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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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속의 ‘잠자는 개’를 깨우지 마세요

2015.01.12 18:00

한 달 전 쯤 어느 날 저녁 입술 주변이 약간의 작열감과 함께 간질간질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작은 물집이 올라와 있었다. 단순포진(herpes simplex)이다. 몸이 피곤했는지 면역력이 약해져 잠자고 있던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준동한 것이다.

 

필자는 몸이 좀 약한 편이라 일 년에 두세 차례 이런 일이 생기는데 수년 전부터는 항바이러스 연고로 대처하고 있다. 간질간질할 때 바르면 물집이 약간만 잡히고 넘어가는데 이번엔 깜빡했다. 뒤늦게 바르긴 했지만 이미 꽤 퍼져 딱지가 떨어져나가기까지 한 보름동안 보기에도 안 좋고 수염을 깎을 때도 꽤 불편했다.

 

많은 사람들이 헤르페스바이러스로 인한 물집이 생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야 수시로 인간을 공격하지만 대부분은 감기바이러스처럼 면역계가 대응을 하면서 일망타진된다. 그런데 헤르페스바이러스란 놈은 아주 약아서 면역계와 싸움이 안 되겠다 싶으면 면역세포가 닿지 않는 감각신경절에 숨어 잠복기에 들어간다. 헤르페스의 어원인 그리스어 ‘herpin’이 ‘잠복’이라는 뜻이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깨어나 입술주변 같은 곳에 물집이 잡히게 하는 단순포진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 위키피디아 제공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깨어나 입술주변 같은 곳에 물집이 잡히게 하는 단순포진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 위키피디아 제공

헤르페스바이러스는 사람처럼 DNA이중나선을 게놈으로 지니고 있는데 크기가 10만 염기가 넘고 유전자도 많게는 160개나 되는 꽤 큰 바이러스다. 사람에게 감염해 문제를 일으키는 헤르페스바이러스는 8종으로 단순포진을 일으키는 HHV-1은 그래도 얌전한 녀석이다. 굉장히 고통스럽다는 대상포진 역시 헤르페스바이러스(HHV-3)가 일으킨다. 보통 한 사람 몸에 헤르페스바이러스가 2~3종은 있다고 한다. 불운하게도 필자의 몸에는 HHV-3도 잠복해 있다.

 

한편 필자가 바른 항바이러스연고는 바이러스의 게놈복제를 방해하는 약물로 뉴클레오시드 유사체다. 세포 안에 들어온 약물은 효소의 작용으로 삼인산 형태가 된다. 바이러스의 DNA중합효소가 이 약물(삼인산 형태)을 뉴클레오티드(이 경우 데옥시구아노신삼인산)로 착각해 갖다 쓰면서 게놈복제가 엉망이 된다. 비유하자면 집을 지으면서 속이 빈 벽돌을 갖다 쓰는 셈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아주 나쁜 녀석은 아니다. 경찰을 피해 몸을 숨기는 좀도둑이라고 할까. 반면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라고 불리는 바이러스들은 정말 사악하다. RNA단일가닥을 게놈으로 지니는 이 녀석들은 사람 세포에 침입해 DNA이중가닥으로 변신한 뒤(이를 역전사라고 부른다) 게놈 안에 끼어들어간다. 이 상태를 프로바이러스(provirus)라고 부른다.

 

일단 게놈에 안착한 바이러스는 마치 유전자가 발현하듯이 전사를 통해 게놈을 증식하게 된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즉 에이즈바이러스가 바로 레트로바이러스다. 에이즈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처럼 게놈에 들어가기 때문에 언제 에이즈가 발병할지 모른다. 평생 약을 먹으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튼 우리 몸에 이런저런 바이러스들이 잠복해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기분이 찜찜하다.

 

●게놈의 45% 차지하는 전이성 인자 

 

약간 짙은 피부색을 남기고 물집이 사라진지도 꽤 된 지난주초 막 배달된 학술지 ‘사이언스’(2014년 12월 5일자. ‘사이언스’는 구독료가 싼 대신 보통 한 달 뒤에나 도착한다)를 뒤적거리다 특이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Sleeping dogs of the genome’, 즉 게놈 속의 잠자는 개라는 말인데, 보통 잠자는 개를 깨우면 골치가 아프다(짖거나 문다).

 

물론 개 얘기는 아니고 인간게놈 속에 잠복해 있는 레트로트랜스포존(retrotransposon)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소개한 글이다. 레트로트랜스포존은 전이성 인자(transposable element)의 하나로(다른 하나는 DNA 트랜스포존이다), 우리 게놈에서 무려 42%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인간게놈에서 유전자를 정보를 담고 있는 부분은 1.5%에 불과하다.

 

전이성 인자는 옥수수 유전학을 연구하던 바바라 맥클린톡이 1940년대 발견했는데, 한마디로 게놈 여기저기로 옮겨 다닐 수 있는 DNA조각이다. 또 해당 부분이 복제된 DNA조각이 게놈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 결과 한 게놈에 수백에서 심지어 수백만 카피가 존재하기도 한다. 수억 년에 걸친 진화과정동안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이성 인자가 우리 게놈의 45%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소위 말하는 ‘정크DNA’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이다.

 

바로 DNA조각을 만들기 때문에 더 간단할 것 같은 DNA 트랜스포존은 3%밖에 안 되는 반면 RNA조각(단일가닥)을 먼저 만든 뒤 이를 주형으로 DNA조각(이중나선)을 만들어 게놈에 끼워넣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이 42%를 차지하고 있다. 그 메커니즘이 레트로바이러스의 프로바이러스와 매우 비슷하다.

 

인간 게놈의 45%는 전이성 인자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은 L1(16.9%), Alu(10.6%), LTR 레트로트랜스포존(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8.3%)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정크DNA로 알려진 레트로트랜스포존 가운데 일부가 여전히 활동하면서 숙주(인체)의 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 네이처 유전학 제공
인간 게놈의 45%는 전이성 인자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은 L1(16.9%), Alu(10.6%), LTR 레트로트랜스포존(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8.3%)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정크DNA로 알려진 레트로트랜스포존 가운데 일부가 여전히 활동하면서 숙주(인체)의 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 네이처 유전학 제공

즉 부모의 생식세포가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돼 프로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상태의 게놈을 물려받을 수 있다. 이처럼 개체가 직접 감염되지 않고 물려받은 프로바이러스를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라고 부른다.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는 레트로트랜스포존의 한 유형으로 인간게놈에서 8%를 차지한다. 물론 이 가운데 대다수는 돌연변이가 축적돼 활성을 잃은 ‘화석’ 상태, 즉 정크DNA다.

 

‘사이언스’에 실린 글은 레트로트랜스포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L1이라는 전이성 인자에 대한 얘기다. L1은 우리 게놈에 50만 카피가 넘게 존재하는 정크DNA로 전체 게놈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대략 6000염기 크기로 전이에 필요한 유전자를 두 개 지니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변이가 축적돼 대다수는 작동하지 못하는 화석이지만 100여개는 아직 전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다.

 

전이성 인자는 게놈의 안정성을 해치는 존재이기 때문에(유전자나 발현조절 부위에 끼어 들어가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포는 게놈 속에서 ‘아직 살아있는’ L1, 즉 잠자는 개가 깨어나지 못하도록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먼저 후성유전학적 조치로 DNA메틸화나 히스톤단백질 탈아세틸화로 L1 발현을 억제하고 설사 발현됐을 경우도 전사체를 인식해 파괴하는 RNA간섭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95~270명 당 한 명꼴로 L1이 새로운 자리로 전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1이 포유류 게놈에 침투한 건 1억 500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영장류 진화과정에서 카피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600만 년 전 사람과 침팬지가 갈라진 이후 사람 게놈에 추가된 L1 카피수는 2000여개에 이른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대략 100세대에 하나 꼴이어서 신생아 결과와 일맥상통한다.

 

‘사이언스’의 글은 약간 우울한 내용으로 노화가 진행되면서 L1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져 체세포 게놈의 L1이 깨어나 전이를 일으키며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최근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즉 나이가 들어 생식력이 떨어지는 개체는 자연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의 운반체인 몸의 품질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정교함이 급격히 떨어진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면 시르트6(SIRT6)라는 유전자의 발현이 떨어진다. 이 시르트6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를 암호화하고 있다. 그런데 시르트6가 L1의 DNA 히스톤 복합체를 꽁꽁 묶어 L1의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나이가 들어 시르트6 발현이 줄면 L1에 대한 억제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L1이 준동하면서 게놈의 불안정성이 커진다는 말이다.

 

L1 전이는 게놈 구조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뿐 아니라 주변 유전자 발현을 교란해 면역계 이상반응을 유발할 수도 있고 자체 단백질이 항원으로 작용하면서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거나 자식작용을 유발해 세포가 죽을 수도 있다. 유방암과 대장암이 L1 전이로 인한 게놈 교란으로 발생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결국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레트로트랜스보존이 한 역할(악역)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면역반응 촉진하기도

 

병 주고 약 준다고 2주 뒤인 ‘사이언스’ 12월 19일자에는 레트로트랜스보존의 긍정적인 역할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즉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항체를 만드는 B세포의 성숙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교과서를 보면 항원-항체 반응은 적응면역계로 T세포의 안내를 받아 B세포가 성숙해 면역글로불린G 항체를 만든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실제 면역계를 보면 이와는 별도로 면역글로불린M 항체를 만드는 B세포가 더 빠른 시간 안에 성숙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메커니즘은 모르는 상태였다.

 

레트로트랜스포존 L1의 전이 메커니즘. 게놈에서 L1(위 파란색)이 발현해 RNA가 만들어지면 세포핵 밖으로 나가 단백질과 복합체를 이룬 뒤 다시 세포핵 안으로 들어와 게놈에 끼어들어간다(아래 빨간색). 숙주인 인체는 게놈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전이를 억제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100세대에 한 개 꼴로 생식세포에서 전이가 이뤄지고 있다. 체세포의 경우는 노화에 따라 더 빈번하게 L1 전이가 일어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레트로트랜스포존 L1의 전이 메커니즘. 게놈에서 L1(위 파란색)이 발현해 RNA가 만들어지면 세포핵 밖으로 나가 단백질과 복합체를 이룬 뒤 다시 세포핵 안으로 들어와 게놈에 끼어들어간다(아래 빨간색). 숙주인 인체는 게놈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전이를 억제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100세대에 한 개 꼴로 생식세포에서 전이가 이뤄지고 있다. 체세포의 경우는 노화에 따라 더 빈번하게 L1 전이가 일어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논문은 이 과정에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힌 내용이다. 즉 몸에 침입한 병원체를 잡아먹은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가 병원체 세포 표면의 일부인 탄수화물 조각을 항원으로 뱉어내면 이 항원이 B세포 표면의 수용체에 달라붙는다. 그러면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의 전사가 일어나고 전사체(RNA단일가닥)나 역전사된 DNA이중가닥이 신호로 작용해 B세포를 성숙시켜 항체를 만들게 한다는 것.

 

이제는 고전이 된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는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를 생명의 단위로 설정함으로써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켰다. 이에 따르면 우리의 게놈 역시 이기적 유전자들의 집합소일 뿐이고 이 가운데 레트로트랜스포존이야말로 이기적 유전자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이 녀석들이 몸 안에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가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생각 이상으로 골치 아픈 존재임이 밝혀지고 있다. 물론 최근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처럼 우군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로병사에서 본격적으로 노(老)의 단계에 들어간 필자로서는 게놈 속에 잠자는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지적인 만족은 얻었을지언정 영 반갑지 않지만 한마디 인사는 해야겠다.

 

“얘들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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