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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마커, 질병 진단에서 개인맞춤의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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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1일 12:51 프린트하기

직장인 A 씨는 지난해 말 종합건강검진에서 혈액 내 중성지방의 양이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A 씨는 표준체중이었기 때문에 체내 지방의 양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A 씨는 의사로부터 고지혈증이 의심된다는 진단과 함께 균형 있는 식사를 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어떻게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고지혈증이 의심된다는 진단결과가 나왔을까? 고지혈증은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지방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혈액 내 지방의 양이 늘어난 상태를 말한다. 혈액 내 중성지방의 양이 증가할수록 고지혈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서 중성지방은 고지혈증 여부를 진단하는 지표(잣대)가 된다.


생명활동은 복잡하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거나 특정 증상이 나타날 경우 이를 판단하는 지표가 필요하다. 인체 내 세포 수는 약 100조 개에 달한다. 세포마다 들어 있는 유전물질인 DNA나 RNA, 세포들 간 유기적인 상호작용에 의한 부산물까지 모두 합하면 그 양이 엄청나다. 반면 세포나 단백질이 이동, 뇌에서 신호가 전달되는 양상, 암세포가 증식하는 모습 등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나 미세할 뿐 아니라 뚜렷한 색이나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 또는 현상과 관련된 지표물질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바이오 마커(bio-marker)’다.

 


간단하게 암, 심근경색 진단


 

암을 진단할 때 특정 암이 내놓는 단백질과 반응하는 바이오 마커를 주입해 암을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다. - Shutterstock 제공
암을 진단할 때 특정 암이 내놓는 단백질과 반응하는 바이오 마커를 주입해 암을 간편하게 진단할 수 있다. - Shutterstock 제공

바이오 마커란 몸속 세포나 혈관, 단백질, DNA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다. 바이오 마커라는 단어를 처음 정의한 곳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다. NIH는 ‘바이오 마커란 정상적인 생물학적 과정, 질병 진행 상황, 치료방법에 대한 약물의 반응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지표’라고 정의했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관찰이 어려운 특정 바이오 마커에 색을 입히거나 빛을 내는 물질을 붙이는 등으로 관찰을 용이하게 해 주는 시약들을 바이오 마커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혈압이나 체온, 혈당 수치 같은 생리학적 지표가 바이오 마커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생명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현대에는 유전물질(DNA, RNA), 단백질, 세균, 바이러스 등이 바이오 마커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사망원인 1위인 암을 예로 들어보자. 암세포는 증식하면서 혈액으로 특정 단백질을 배출한다. 특정 암이 내놓는 단백질을 바이오 마커로 활용, 해당 단백질과 반응하는 진단시약을 사용하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다. 만성골수백혈병의 경우에는 ‘bcr-abl 융합유전자’가 바이오 마커 역할을 한다. 이 융합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백혈병을 진단하게 된다.


심근경색도 트로포닌이라는 바이오 마커를 이용해 진단할 수 있다. 급성 심근경색의 경우 발생 후 ‘골든타임(사고 발생 직후 응급처치나 긴급구조를 통해 인명 구조가 가능한 짧은 시간)’이 지나기 전 응급처치가 필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사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심근경색을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 마커의 활용이 보편화된다면 심근경색의 발병을 예견하고 미리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바이오 마커는 질병 진단 분야에서의 활용이 가장 크게 기대되고 있다. 암이나 심근경색 등 생명을 앗아가는 질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민 건강 증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RNA부터 미세혈관까지 관찰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는 바이오 마커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IBS RNA연구단에서는 암 등을 진단하는 데 바이오 마커로 활용도가 높은 마이크로RNA(miRNA)의 생성 비밀을 밝혀냈다. 마이크로RNA는 세포내 물질로 유전자가 과도하거나 부족하게 활동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마이크로RNA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암이나 당뇨 등 질병을 앓을 수 있다.

 

 

드로셔의 3차원 단백질 구조 - IBS 제공
드로셔의 3차원 단백질 구조 - IBS 제공

연구단은 마이크로RNA를 만드는 ‘드로셔(DROSHA)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내 RNA생성의 비밀에 다가선 것이다. 이 연구는 지난 1월 1일 생명과학분야 세계 유명 학술지인 <셀(Cell)>에 실려 새해 벽두부터 국내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김빛내리 단장과 우재성 IBS 연구위원(서울대 연구교수)는 ‘드로셔-DGCR8’ 단백질 복합체가 1개의 드로셔와 2개의 DGCR8 분자로 구성돼 있음을 처음으로 규명한 데 이어 엑스선을 이용해 드로셔 단백질의 3차원 구조까지 밝혀낸 것이다. 드로셔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밝혀지면서 마이크로RNA가 생성될 때 드로셔 단백질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과정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마이크로RNA의 생성과 발현과정을 이해하고 유전자 변이나 이상 발현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는 법을 찾는 데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IBS 혈관 연구단은 인체에서 혈관이 생성‧유지되는 과정이나 질병에 걸렸을 때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해 관찰하고 그 원리를 탐색하고 있다. 연구단은 신생 혈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혈관조영술을 사용하고 있다. 혈관조영술은 혈관 안에 엑스선을 쬐면 보이는 물질을 넣고 엑스선으로 촬영하는 방식이다. 혈관 내에서 엑스선에 반응하는 물질을 내놓도록 바이오 마커를 사용하는 것이다.


고규영 IBS 혈관 연구단장(KAIST 특훈 교수)은 혈관이 생성을 촉진하는 단백질인 ‘콤프 앤지원(COMP-Ang1)’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콤프 앤지원은 혈액 내 단백질을 새롭게 디자인해 만든 것으로 물에 잘 녹고 응집이 잘된다. 이 물질을 사용하면 혈관 생성이 촉진돼 상처가 더 빨리 아물게 된다. 고 단장은 이 물질을 개발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 이를 계기로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이 단백질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고 단장은 2014년 암세포의 혈관에서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바이오 마커인 ‘로제이(RhoJ)’라는 단백질을 찾아내기도 했다. 연구단은 암에 걸린 쥐에서 로제이 단백질의 발현을 막자 암혈관은 물론 암세포 가장자리에 있는 혈관의 성장도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세포 주변 혈관이 줄어들어 암세포가 먹고 살 양분이 없어지는 셈이다. 이 연구성과는 새로운 암 치료법이 개발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려주는 똑똑한 센서, 바이오 마커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에서 찾은 ATAD5는 암을 진단하는 바이오 마커로 사용될 수 있다. - IBS 제공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에서 찾은 ATAD5는 암을 진단하는 바이오 마커로 사용될 수 있다. - IBS 제공

IBS 유전체 항상성 연구단에서는 DNA의 복구 과정을 연구해 암과 노화의 비밀을 밝혀내고 있다. 명경재 단장은 DNA의 복제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 ATAD5를 찾아냈다. ATAD5는 종양 억제 유전자로 작용한다. 연구진은 생쥐에서 ATAD5의 발현 양을 의도적으로 줄이면 암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자궁내막암, 대장암 등 사람 암 세포에서 ATAD5 유전자의 돌변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ATAD5 유전자의 이상발현이 암 유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유전자 ATAD5를 지속적으로 추적한다면 암을 진단하는 바이오 마커로 사용할 수도 있다.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에서도 뇌 활동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바이오마커를 활용하고 있다. 연구단은 최첨단 신경 이미지(뉴로 이미징) 기술을 활용해 뇌의 구조와 기능의 상관관계, 인간의 행동과 신경회로망의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있다. 연구단이 주로 활용하는 MRI, 광학영상 등에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바이오마커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나노 조영제는 나노물질과 특정 단백질, 형광 물질 등을 조합해 만든다. 나노 조영제는 뇌 활성화 부분을 측정하거나 암세포를 관찰하는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연구진은 나노 조영제 외에도 다양한 바이오 마커를 이용해 뇌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신경전달지도(신경회로망)를 구성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르몬이나 특정 신경 물질에서 발현되는 바이오 마커를 찾고 개발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바이오 마커는 개인맞춤의학·예방의학이 도래하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암이나 심근경색 등 질병의 조기 발견뿐 아니라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미국 NIH는 다운증후군 환자에서 알츠하이머병의 바이오마커를 규명하고 진행하는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발견된 알츠하이머 바이오마커는 치매 환자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바이오 마커는 ‘똑똑한’ 센서와 같다. 암이나 심근경색 등 질병과 밀접하게 관련된 마커만 알면 복잡한 생명현상 속에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병을 진단할 수 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려주는’ 셈이다. 바이오마커의 종류는 다양하고 그 작동 방식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는 것이 많다. IBS에서는 다양한 기초과학 연구를 통해 바이오 마커를 발견하고 작동원리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똑똑한 센서, 바이오 마커의 신비가 많이 밝혀지기를 기대해본다.

 

 

* 본 콘텐츠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온라인 뉴스레터 IBS 뉴스레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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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민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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