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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음식과 요리를 만나 새로운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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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9일 08:03 프린트하기

 

요리는 종합 과학이다. 분자요리를 본격적으로 알린 헝가리의 물리학자 니콜라스 코르티와 프랑스 화학자 에르베 티스가
요리는 종합 과학이다. 분자요리를 본격적으로 알린 헝가리의 물리학자 니콜라스 코르티와 프랑스 화학자 에르베 티스가 '분자물리요리학'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이유도 요리의 종합 과학적 성격 때문이다. - wikipedia 제공

 

예술이나 철학과 같이, 음식은 역사 이전부터 우리 인류의 삶을 지배해왔다. 최근 연구로 요리가 인류 진화의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문화권마다 각 가정마다 살아온 모습과 취향에 따라 음식은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최근 '쿡방(Cook과 방송의 합성어)'이 방송계 대세로 떠올랐다. 유명인의 냉장고를 구경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든다. 요리 대가들이 스튜디오에서 패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기도 하고, 서로 요리대결을 펼쳐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요리사들에게 조리법은 자신만의 비기이다. 며느리에게만 전수한다는 전통 비법부터 혹독한 훈련과정을 통해 익힌 요리법 등 다채로운 요리세계만큼이나 조리법은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서도 '분자요리'는 가장 핫한 조리법이다.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분자요리는 현장에서 활용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요리와 과학의 독특한 조합인 분자요리는, 과학을 통해 신비한 맛의 세계를 탐험하는 과감하고도 정밀한 조리법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요리 세계에 새롭게 등장한 과학, 둘의 신선한 조합을 살펴보자.

 

 

물리화학적 변화를 다루는 분자요리의 세계


분자요리는 물리화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분자단위까지 재료와 조리법을 분석하는 조리법으로, 전통적인 조리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맛과 향, 식감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 wikipedia 제공
분자요리는 물리화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분자단위까지 재료와 조리법을 분석하는 조리법으로, 전통적인 조리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맛과 향, 식감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 wikipedia 제공

분자요리는 이름 그대로 물리화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분자단위까지 재료와 조리법을 분석해 만들어내는 조리법이다. 전통적인 조리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맛과 향, 식감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한때는 주방에서 선보이는 여흥 정도로 폄하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분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조리법도 있다. 알긴산과 칼슘을 이용하여 졸(sol) 상태의 재료를 얇은 막을 지닌 캡슐로 가공하는 구체화(Spherification) 기법은 시중의 칵테일 바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진공 포장하여 60℃ 정도의 물에서 천천히 조리하는 '수비드(Sous Vide)'는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면서 영양분을 보존할 수 있어 전통적인 조리법을 따르는 요리사들도 애용하곤 한다. 수비드 기법으로 익힌 스테이크는 고급 레스토랑의 단골 메뉴다.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정보안내서이자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 가이드(Guide Michelin)'에서도 분자요리 전문 레스토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분자요리의 기법들에서 보듯 요리는 종합 과학이다. 분자요리를 본격적으로 알린 헝가리의 물리학자 니콜라스 코르티와 프랑스 화학자 에르베 티스가 '분자물리요리학(Molecular and Physical Gastronomy)'이라는 이름을 제안한 이유도 요리의 종합 과학적 성격 때문이다.

 

분자요리의 유행에 따라 과학자와 요리사들이 공동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버드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과정 '과학과 요리'다. 2008년부터 정식 커리큘럼으로 개설된 동명 강의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수업의 부제 '최고급 요리에서 연성물질 과학까지(From Haute Cuisine to Soft Matter Science)'에서 보듯이, 물질의 물리화학적 변화를 다양한 조리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수업이다. 과일 젤리를 만들기 위해 과일주스를 113도까지 가열한 후 설탕과 펙틴을 섞으며 탄성과 점성에 대해 설명한다. 스테이크를 굽는 정도를 통해 단백질의 분자구조와 탄성간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팀을 조직해서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기도 한다.

 


발효의 비밀, 과학적으로 밝혀야 할 과제



분자요리는 물리화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분자단위까지 재료와 조리법을 분석하는 조리법으로, 전통적인 조리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었던 맛과 향, 식감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 wikipeida 제공
발효식품이 흥미로운 점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즐겨 왔지만 정확한 원리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wikipeida 제공

과학자와 요리사의 협력이 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오랜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여 온 전통적인 조리법들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수많은 전통 요리 속에 숨은 과학적 비밀들이 아직 모두 베일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발효식품이다. 발효는 혐기성 미생물이 무기호흡을 통해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산이나 알코올을 이용하는 식품이 바로 발효식품이다. 일반적으로 단백질을 분해하는 '부패' 과정을 응용한 음식도 발효식품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발효식품이 흥미로운 점은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즐겨 왔지만 정확한 과학적 원리는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효는 화학반응이 아니라 미생물의 대사활동에 의해 일어난다. 문제는 발효과정에서 활동하는 미생물들이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김치의 경우 흔히 젖산균이 발효과정에 관여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김치에서는 이로운 유산균과 유해세균이 함께 발견된다.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이뤄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효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발효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발효 과정에서 증식한 미생물들이 우리 몸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몸속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과학자들은 한 사람의 몸속에 1만여 종의 미생물 100조 마리 이상이 살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 중 상당수가 소화관 내에 산다. 대장에서는 평균 4000여 종, 이에서는 1300여 종의 세균이 발견될 정도다. 이들 소화관 내의 미생물들은 물질대사와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물론이고 천식, 류머티즘 관절염, 크론병 등 다양한 질병이 체내 미생물과 연관이 있다.

 

미생물들은 숙주인 사람의 대사과정을 촉진하거나 저해하기도 한다. 사람은 필수 아미노산이나 비타민 중 일부를 장내 세균이 음식물을 분해한 산물에서 얻을 뿐 아니라, 소화 과정에서 흡수하는 에너지의 10~15%를 장내 세균의 분해산물로부터 충당한다. 이처럼 영양소 흡수 효율이나 질병에 대한 민감성에 영향을 주는 장내 미생물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몸속의 미생물 군집은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마다 미생물 군집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식생활 때문이다. 특히 섭취하는 발효식품의 종류와 양이 미생물 군집에 영향을 준다. 소화관 속 미생물 중 상당수는 음식과 함께 유입되는데 미생물이 풍부한 발효식품의 경우 미생물군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생물들의 변화는 미생물군이 함유한 유전정보의 변화를 동반한다. 결국 미생물군의 유전 정보가 계속 변하면서 건강상태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음식과 미생물의 과학, 우리 건강을 지킨다

 

 

음식물의 장내 면역반응 억제 원리 모식도.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몸속에 늘 존재하는 미생물 집단인 상재미생물총과 면역계의 상호작용을 주 연구대상으로 한다. - IBS 제공
음식물의 장내 면역반응 억제 원리 모식도.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몸속에 늘 존재하는 미생물 집단인 상재미생물총과 면역계의 상호작용을 주 연구대상으로 한다. - IBS 제공

 

음식을 맛있고 건강하게 섭취하기 위해서는 체내 면역체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물도 사실상 면역체계는 외부 물질로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물을 섭취할 때 면역반응이 억제되기 때문에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최근 IBS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단장 찰스 서 Charles D. Surh)은 음식물 항원이 장내 면역체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해 큰 주목을 받았다.

 

면역 미생물 공생 연구단은 몸속 미생물 집단과 면역계의 상호작용을 주 연구대상으로 한다. 특히 알레르기 반응을 비롯한 면역이상증상이 중요한 연구 과제인데, 이번 연구로 장 점막의 면역체계에 음식물에서 유래된 물질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성분과 미생물이 장내 환경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연구단은 앞으로도 면역에 관한 주요한 연구들을 수행하며 음식물 알레르기를 비롯한 면역 과민 질환의 원인을 탐색할 예정이다.

 

음식은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우리 몸속에 소화돼 흡수되기까지, 수많은 분자와 생명이 이루어내는 복잡한 교향곡이자 오묘한 생태계다. 인류의 역사보다 오랜 시간 존재해온 음식의 세계. 여러 분야에서 요리에 다양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음식과 인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야 시작됐다. 아직 밝혀야 할 비밀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 세계 다양한 음식들과 요리, 미생물과 건강 등 많은 연구들로 인류의 식탁이 풍요로워지길 기대한다.

 

 

* 본 콘텐츠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온라인 뉴스레터 IBS 뉴스레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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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원

tw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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