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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뇌 연구: 기억과 의사결정, 시간 지각의 비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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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4 09:05 프린트하기

“Life is short, Science is long(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다).” 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정민환 부연구단장(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은 자신의 연구 분야를 이 한 마디로 압축해 설명했다. 인간의 뇌가 어떻게 일어나는 일들에 판단을 내리고, 기억하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아직도 잘 몰라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미지의 분야인 뇌를 연구하는 만큼 그의 연구실은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실험동물 뇌에 부착할 전극을 준비하고, 연구실 내부의 여러 밀폐된 실험실에서는 다양한 실험 상황을 만들어 뇌에 전극을 연결한 실험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시스템 신경과학 분야에서 뇌를 연구해온 그는 2013년 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에 합류해 지난해 11월 부연구단장으로 선임됐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를 만나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IBS 내에서의 목표에 대해 들어 보았다.

 


한 번 겪은 일도 기억하는 뇌의 비밀을 탐구하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뿐만 아니라 딱 한 번 겪은 일도 기억할 수 있다. 이러한 기억을 ‘일화적 기억(episodic memory)’이라 한다. 일화적 기억은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위에서 관장한다고 알려졌지만, 그 구체적 과정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견이 분분하다. 정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해마에서의 정보 처리 과정에 대해 기존 이론과는 다른 독창적인 이론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해마 중에서도 정보가 처음 들어오는 부위인 ‘치상(dentate gyrus)’ 부위에 주목하고 있어요. 치상의 역할에 관한 주류 이론은 치상이 뇌에 들어오는 독립적인 정보들을 서로 다른 것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치상이 감각 정보의 통합에 관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는 시각, 청각, 몸의 움직임 등 여러 감각 정보가 통합되어야 하는데, 여기에 치상의 역할이 꼭 필요한 것이죠.”

 

실험동물의 뇌에 심을 전극을 만드는 연구원의 모습. 연구실 안 여러 실험실들에서는 실험동물들의 의사결정과 기억에 관한 연구가 한창이다. - IBS 제공
실험동물의 뇌에 심을 전극을 만드는 연구원의 모습. 연구실 안 여러 실험실들에서는 실험동물들의 의사결정과 기억에 관한 연구가 한창이다. - IBS 제공

최근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으로 치상 부위가 손상된 생쥐를 만든 뒤, 특별하게 제작된 수중 미로에 넣고 생쥐의 행동을 관찰했다. 수중 미로 속에는 물에서 나와 쉴 수 있는 도피대가 숨겨져 있는데, 물에 빠진 생쥐들이 도피대의 위치를 기억해 찾아가는 방식을 관찰함으로써 생쥐의 공간 기억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정상 치상을 가진 생쥐는 도피대의 위치가 바뀌어도 여러 감각 정보의 통합으로 도피대를 찾아가지만, 치상이 망가진 생쥐는 변경된 위치를 인지하지 못해 이전 위치에서 도피대를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물은 시각적 단서뿐 아니라 전정기관에 근거해 ‘경로 통합 지도(path integration map)’를 머릿속으로 그립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고 변동이 생겨도 다시 그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감각 정보들이 합쳐지는 곳이 바로 치상입니다.”

 


쥐의 전전두피질 연구에 뛰어들다

 

해마를 연구하던 정 부연구단장은 아주대 의학과 교수 시절부터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부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뇌의 앞쪽인 전두엽에서도 제일 앞쪽 표면으로 이마 밑 두개골 바로 안쪽에 위치한 전전두피질은, 판단과 의사 결정 등을 담당하는 부위다. 정 부연구단장은 실험이 용이한 생쥐를 대상으로 전전두피질 연구의 범위를 확장, 유의미한 연구 성과들을 내놓으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정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생쥐가 효용가치에 따라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에 관한 실험 연구를 수행했다. 왼쪽 통로보다 오른쪽 통로에서 먹이가 나올 확률이 높은 실험 조건에 생쥐가 익숙해지게 한 뒤, 먹이 제공 방향을 반대로 바꾸면, 생쥐는 실험 조건의 변화를 인지해 자신이 먹이를 먹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생쥐들이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는지 주관적 효용가치를 아는 것이죠. 효용가치 정보는 전뇌(forebrain)의 광범위한 부위에서 계산됩니다. 효용가치에 따른 행동 선택을 담당하는 생쥐의 뇌 부위는 이차운동피질인데, 놀랍게도 사람도 비슷한 뇌 부위에서 효용가치를 계산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선택합니다.”


생쥐와 인간은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쥐의 전전두피질 연구결과는 인간의 뇌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의 의사 결정은 동물의 의사 결정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인간은 효용가치만을 계산해 행동하지는 않아 예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정 부연구단장은 “효용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은 진화적으로 오래 되었습니다. 우리 뇌의 원시적인 부분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데, 이 때문에 인간의 의사결정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라며 웃었다.

 


시간 지각의 이상이 뇌 질환 가져오는 원인일 수 있어

 

정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뇌가 어떻게 시간의 흐름을 지각하는지도 연구 중이다. 예를 들어 반복 훈련을 통해 생쥐가 시간의 길이에 따른 먹이 위치를 판단해야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실험 조건을 설정한다. 생쥐에게 소리 자극을 주어, 3초 이하 음이 들리면 왼쪽에, 3초 이상의 음이 들리면 오른쪽에 먹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실험 결과, 생쥐가 올바르게 시간을 지각하는 데는 전전두피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해당 부위 뉴런들의 발화율이 서서히 변화함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공간 정보에 대한 뇌 연구에 비해, 시간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히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뇌의 시간 지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뇌질환이나 정신질환 치료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 지각 연구는 정신 질환 치료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이 시간 지각의 문제라는 이론도 있죠. 뇌질환의 원인을 잘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기억이나 의사결정, 시간 지각과 같은 고위 뇌기능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뇌 연구의 미래, 뇌 질환과 뇌 신경 메커니즘의 관계 밝히고파

 

서울대 동물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뇌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미국 문화원의 대학 가이드북만을 보고 ‘학습 및 기억 연구센터(Center for Learning and Memory)’가 있는 캘리포니아대를 선택했을 정도로 연구 분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심리학과 생물학 둘 다 공부할 수 있었던 그 곳에서 그는 차근차근 꿈을 키웠다.


대학원 때부터 약 30년간 뇌 연구를 해 온 정 부연구단장은 여전히 연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그가 진행한 작업 기억(Working Memory: 일시적인 정보들로 현재 활용되는 기억)에 관한 연구는 2012년 한국연구재단의 ‘10년간 인문․사회과학 분야 상위 150대 연구업적’에 선정됐고, 2013년에는 기억 및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로 한국뇌신경과학회에서 1세대 뇌 과학자 장진 교수를 기념하는 제1회 ‘장진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정 부연구단장이 생각하는 뇌 분야 연구의 미래는 어떨까.

 

정 부연구단장은 고위 뇌 기능 연구로 정신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IBS 제공
정 부연구단장은 고위 뇌 기능 연구로 정신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IBS 제공

“2005년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광유전학을 이용하면 특정 신경 회로만 조작하고 측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외에도 바이오 이미징 기법을 이용해 신경활동을 측정하는 등 새로 개발된 연구기법들이 뇌 과학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저도 이러한 새로운 기법을 도입해 고위 뇌기능을 밝혀내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광유전학은 빛으로 단백질의 기능은 물론 동물의 행동까지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정 부연구단장은 광유전학 전문가인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의 허원도 그룹리더(KAIST 생명과학과 교수)와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의 김은준 연구단장과도 공동연구를 진행중이다. 정 부연구단장은 신경회로의 변화가 행동 변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연구하는 시스템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자다. 분자가 변할 때 시냅스, 신경회로, 행동이 차례로 변화하기 때문에, 분자생물학적 수준의 연구와 상호 보완적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 부연구단장은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기억과 같은 고위 뇌기능이 뇌 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뇌 신경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뇌 질환이나 정신 질환의 원인을 파악해 치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자폐증, 조현병, 우울증 등에 걸린 환자는 의사결정 과정이 점차 변하게 됩니다. 의사결정 과정과 질병 간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밝혀내면, 뇌 질환 및 정신 질환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고위 뇌기능 연구가 질환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 본 콘텐츠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온라인 뉴스레터 IBS 뉴스레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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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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