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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바꾸는 연구가 노벨과학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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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2일 14:28 프린트하기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인공제회에서 발행한 <SEMA 함께 행복 同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1895년에 남긴 유언에 따라 시작된 노벨상은 매년 1천만 스웨덴 크로나(Kr)의 상금과 더불어 세계적인 유명세와 명예를 수여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인류 문명의 발전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이라는 기준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혁신과 창의성의 업적을 평가하는 잣대로까지 사용되고 있다.

 

노벨상의 6개 분야 중에서 국가 간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3개의 과학상이다. 경제학상, 문학상, 평화상은 개인의 업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물리학상, 생리·의학상, 화학상은 조직 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쏟아 부은 연구개발비의 결과물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대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학술정보업체 톰슨로이터(Thomson Reuters)가 '노벨과학상 후보에 오를 만한 한국인 과학자 16인'을 예측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300회 이상의 논문 피인용 지수를 기록해 상위 1퍼센트에 오른 세계 과학자 3천 200명을 추려내고 그 중에서 국내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16명을 선별한 것이다. 그러나 수상 소식을 기다리던 국민들은 올해도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물리학상은 '청색 LED'를 개발한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 85) 일본 메이조대 종신교수, 아마노 히로시(天野浩, 54) 일본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 60) 미국 UC샌타바버라 교수 등 일본인 과학자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이들은 1990년대 초 고효율의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발광다이오드(LED)는 화학 화합물에 전류를 흘려보내 빛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에너지 소모가 적어 기존의 백열전구와 형광등을 대체할 미래형 조명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1962년 미국에서 갈륨비소인(GaAsP)을 합성해 적색 LED가 처음 발명되었고 1967년에는 녹색 LED가 등장했다. 이후에 황색 LED도 개발되었지만 청색 LED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30년이 다 되도록 전해지지 않았다.

청색 LED는 백색 광원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물체의 색을 표현할 때는 빨강, 파랑, 초록을 섞어 온갖 색을 만들어낸다. 인쇄물에는 자홍색(magenta), 청록색(cyan), 노랑색(yellow)의 3원색을 사용한다. 반면에 빛은 3원색의 조명을 한데 섞을 경우 흰색의 광원이 된다. 실내조명을 비롯해 각종 산업분야에서 사용하려면 순수한 흰 빛의 LED가 개발되어야 한다. 수많은 연구자와 기업이 달려들었지만 줄줄이 실패했다.

이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질화갈륨(GaN)을 이용해 1994년 마침내 청색 LED를 탄생시켰다. 덕분에 1997년에는 일본 회사 니치아가 백색 LED를 개발해 국제특허를 신청한다. LED는 단위면적당 빛 발생 효율이 백열전구의 18배, 형광등의 4배에 달하며 수명도 백열전구의 100배, 형광등의 10배다. 백색 LED는 일반 LED보다 그보다 효율이 50퍼센트나 더 뛰어나다. 청색 LED 기술은 살균 기능이 있는 자외선램프에도 쓰이기 때문에 보건위생과 생물학 분야에서도 필수적이다.

노벨상의 영광을 안긴 것은 주변의 손가락질에 영향 받지 않는 뚝심이었다. 지난 21일 한국을 찾은 슈지 교수는 "널리 시도되던 셀렌화아연(ZnSe) 대신에 질화갈륨(GaN)을 선택했더니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다"며 "당시 니치아는 중소기업이어서 새로운 시도에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존 오키프(John O'Keefe, 75)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수, 노르웨이 과학기술대의 마이브리트 모세르(May‐Britt Moser, 51)와 에드바르드 모세르(Edvard I. Moser, 52) 교수 부부 등 3명으로 결정되었다. 이들은 뇌세포 내에서 위치와 방향을 파악하는 '장소세포(place cell)' 시스템을 발견한 공로로 선정되었다.


 



오키프 교수는 미로 속에서 쥐가 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을 관찰하며 위치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궁금증을 가지고 1960년대부터 실험을 계속해왔다. 어느 날 쥐의 뇌 속 해마 세포들의 반응을 기록하던 중에 장소세포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특정 위치를 찾으려는 시도와 함께 활성화되는 세포가 있고 해당 장소로 이동할 때 활발해지는 세포가 있던 것이다. '몸 안의 GPS'라고도 불리는 이들 장소세포는 주변 환경에 대한 지도를 머릿속에 구축함으로써 올바른 위치를 찾게 해준다.

모세르 교수 부부는 2005년 실험에서 또 다른 위치정보 처리 시스템인 '격자세포(grid cell)'의 존재를 발견했다. 미로를 헤매던 쥐가 복합적인 감각요소가 있는 위치를 지날 때마다 내후각 피질의 특정 세포들이 6각형의 격자 무늬로 정렬해서 좌표의 기준점 역할을 했다. 이들 격자세포는 장소세포와 연계해 위치를 파악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키프 교수는 수상 비결로 '연구자 개인의 창의성'과 '조직 차원의 투자'를 함께 꼽았다. 지난 20일 한국을 찾은 자리에서 "연구 초기에는 과학자의 창의성과 노력이 도화선이 된다"고 설명하면서도 "연구가 이어지도록 국가와 연구소에서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학상의 수상자도 3명이다. 에릭 베지그(Eric Betzig, 54) 미국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장, 슈테판 헬(Stefan Hell, 52)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장, 윌리엄 머너(William Moerner, 61)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세포를 나노미터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을 개발했다.


 



기존의 광학현미경은 200나노미터보다 작은 물체를 관찰하지 못한다. 1873년 에른스트 아베(Ernst Abbe)가 가시광선의 파장 길이인 400나노미터의 절반보다 작은 두 물체 간의 거리는 빛의 회절 한계로 인해 일반 광학렌즈로 식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 '아베 회절 한계'는 정설로 자리 잡았다.

이번 수상자들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회절 한계를 극복해냈다. 베지그 소장은 특정 파장의 빛을 쪼이면 밝게 빛나는 형광 단백질을 이용해 미세한 빛을 여러 번 찍고 그 이미지를 합쳐서 세포 내부의 분자들을 선명한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헬 소장은 세포에 레이저를 쪼여서 형광을 발생시키고 도넛 모양의 레이저를 다시 쏴서 주변부의 형광을 억제하는 자극방출억제(STED) 기법으로 특정 부위의 정밀 관찰이 가능하게 했다. 머너 교수는 용매와 고분자로 채워진 응축상에서 분광학을 이용한 분자 관측기법을 개발했다.

올해는 총 9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했지만 우리나라 과학자는 한 명도 끼지 못했다. 비보가 매년 반복되면서 대책과 해결방안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한편 그동안의 패턴을 읽어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 30년 동안의 노벨과학상을 분석해 선정 기준과 경향을 정리한 '패러다임 전환형 과학 연구와 노벨상'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거나 방향을 전환시킨 연구가 전체의 87퍼센트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기존의 패러다임을 확장하거나 명료화시킨 연구는 13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자가 새로운 기준을 창안해도 학계에서 반대하거나 기존 연구와 상충되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적 중요성을 가늠하기가 어려워 연구비 지원 심사에서도 탈락하기 일쑤다.

지금까지의 노벨상이 보여준 경향은 분명하다. 기존 상식을 깨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연구가 아니면 인정을 받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창의적이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에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기에 노벨상 수상도 쉽지 않다.





임동욱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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