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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비즈니스 모델과 과학계의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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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비즈니스 모델과 과학계의 파국

2020.06.04 14:12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비즈니스와 과학의 차이를 지적하는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데, 따라서 그 둘을 섞게 되면 예측할 수 있는 파국을 경험하게 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사랑과 이윤을 하나로 합쳐놓은 결과가 결국 매춘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유리 라제브닉

 

"사유재산에 기초한 시장 경제는 그대로 두면, 특히 지식과 기술의 확산과 결합하여 강력한 수렴력 을가지고있다.또한시장경제는 강력한발산력도가지고있어, 그 발산력은민주주의사회를잠 재적으로 위협하고 민주주의 사회가 기초하고 있는 사회 정의라는 가치를 위협한다." -토마 피케티⁠

 

언젠가부터 과학계에서 비즈니스업계의 용어를 발견하는건 흔한 일이 되었다⁠.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지도교수가 학생과 연구원에게 어떻게 연구를 판매할 것인지 판매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말하는건 일상이 됐다. 이제 연구는 자연을 발견하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연구의 의미와 파급효과를 경제적으로 번역해서 연구비를 지원받는데 사용하는 일종의 생산과 판매의 영역이 됐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라도, 연구비계획서에는 반드시 연구의 효용과 파급효과를 기술해야 하며, 이런 과정은 과학연구자들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업무로 자리잡았다. 연구의 목적은 자연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의 전략에 맞추어 발견을 정렬하는 작업으로 변했다. 

 

흔히 ‘과학의 상업화’라고 불리는 이 문제는 20세기 말부터 이미 과학계에서 제기되어 왔지만 아직까지도 전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치 마땅한 대안이 없어 금융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보통 시민들처럼, 오늘도 보통과학자들은 비즈니스업계를 묘하게 닮아가는 과학계의 연구시스템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가 구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불평등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파헤친다. 지난 300년 동안의 자본주의 실험에서 부는 단 한번도 공평하게 분배된 적이 없다.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항상 높다는 사실과 부의 세습 속에서 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이와 같은 세습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보통 사람들은 결코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과학계는 바로 피케티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연구비 규모를 늘이면 모든게 해결될까

 

20세기 말부터 이미 과학계에는 균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미국으로 옮겨간 과학계의 축은, 그 곳에서 미국식 실용주의를 만나 연구대학의 설립과 대학연구의 상업화라는 목표를 이루게 된다. 대공황과 197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며 연구의 지식재산권인 특허가 대학으로 양도되면서, 대학의 상업화는 가속화되었다. 이런 변화를 이끈건 미국 스탠퍼드대의 정책과 샌프란시스코의 생명공학회사 제넨테크(Genentech)의 설립이었다⁠. 의생명과학은 미국에서 대학과 기업 그리고 정부라는 삼각동맹과 함께 급격히 상업화의 길에 들어섰다.

 

학문의 특성상 산업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생명공학과는 달리, 기초연구를 담당하던 대학의 학과들은 점차 선택을 강요받았다. 전세계의 모든 생물학자들은 바네바 부시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라는 보고서를 올리던 1945년 이후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하게 상업화된 연구시스템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물론 바네바 부시가 보고서를 통해 꿈꾸던 세상에서 과학자사회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했지만, 바네바 부시 또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닮은 과학의 상업화 과정이 초래할 비극적인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과학계의 상업화 바람은 21세기가 되자 더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간헐적인 공황과 외환위기 등으로 전세계의 경제가 항상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과학계 역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연구비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휘청거리는 구조로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미 학계에서 성공한 몇몇 과학자들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고 강변해왔다. 그들은 학문후속세대를 위해 연구비 증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마치 현재 과학계가 처해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적 이유가 연구비의 부족 때문인 것처럼 호도한다. 미국발 금융위기 상황에서 미국정부가 망해가는 은행을 세금으로 살려놓았음에도, 금융자본주의라는 모순적인 구조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듯이, 연구비 증가는 이 모든 사태의 근원적인 해소 방법이 아니라, 파국을 면하는 긴급수혈일 수 밖에  없다. 

 

현대 과학계는 연구비라는 자본과 논문이라는 화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
현대 과학계는 연구비라는 자본과 논문이라는 화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 https://culturico.com/

 

문제는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에 있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귀화한 과학자 유리 라제브닉(Yuri Lazebnik)은 어느 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서 과학자들이 미국립보건원(NIH)에 보내는 서한의 제목을 읽고 경악하게 된다⁠. 'NIH가 의생명과학 연구가능인력을 혁신할 수 없을까'라는 제목이다. 그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탈출하게 된 계기를 묘사하면서, 20세기 러시아가 노동자를 얼마나 기계부속품처럼 취급했는지 언급했다. 당시 러시아가 구호처럼 걸었던 바로 그 단어를 과학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스템의 변화는 언어에 변화를 가져온다. 라제브닉은 과학계가 어느새부턴가 급속도로 비즈니스 모델에 종속되었음을 느끼고 과학연구의 상업화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진단을 수행했다.

 

그는 현재 과학계가 겪는 파국이, 몇몇 과학계의 성공한 리더들이 언급하듯 과학자의 숫자와 연구비의 불균형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파국은 과학예산이 증가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연구비가 정체됐지만 파국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셋째, 파국은 미국 의생명과학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파국은 자연과학계를 넘어 대부분의 학계와 전세계에 공통된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연구비 증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은, 왜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이 연구비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주식시장이 언제나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자본주의자들과 연구비가 항상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의 심리는 동일하다. 그들에겐 그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 의생명과학계가 겪고 있는 파국의 원인은 연구비 증가 속도와 과학자 숫자의 불균형 때문이 아니다. 과학계가 상업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림 출처 Lazebnik, Y
현재 미국 의생명과학계가 겪고 있는 파국의 원인은 연구비 증가 속도와 과학자 숫자의 불균형 때문이 아니다. 과학계가 상업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림 출처 Lazebnik, Y

진단이 달라지면 치료법도 달라진다. 만약 현재 과학계가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지나치게 많은 과학자의 숫자와 연구비 증가 속도의 불일치로 규정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과학자의 숫자를 줄이거나 연구비를 더 빠르게 증가시키는 것 뿐이다. 하지만 연구비는 무작정 증가할 수 없다.

 

국민이 내는 세금과 정부의 지출 정책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비를 과학계 파국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이들의 해결책은 과학자의 숫자를 줄이는 것 뿐이다. 그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동자를 구조조정하는 산업계처럼, 과학계도 비슷한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21세기가 열리며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깨닫게 됐다.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분화가 나타났듯이 과학계 역시 이분화된 연구인력으로 뚜렷한 변화를 겪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완벽하게 나뉜 세상을 맞았다. 

 

진단이 다르면 치료법도 달라진다. 과학계의 파국의 근본원인은 어쩌면 연구비가 아니라 과학계 전체를 지배하게 된 비즈니스 모델 때문인지 모른다. 그림 출처 Lazebnik, Y.
진단이 다르면 치료법도 달라진다. 과학계의 파국의 근본원인은 어쩌면 연구비가 아니라 과학계 전체를 지배하게 된 비즈니스 모델 때문인지 모른다. 그림 출처 Lazebnik, Y.

학계와 마약조직의 차이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알렉산더 아폰소(Alexandre Afonso) 네덜란드 라이덴대 교수는 전세계의 학계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박봉과 직업적으로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꾸준한 공급을 필요로 한다고 폭로했다. 미국과 독일, 그리고 영국의 데이터들은 학계의 일자리 시장이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분화로 치닫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브 레빗은 시카고 마약판매상들은 왜 엄마와 같이 살까라는 주제를 설명하면서 마약을 거래하는 마약상들의 생태계가 극단적으로 이분화돼 마약유통상은 큰 이익을 취하는 반면, 길거리에서 마약을 판매하는 이들은 일반 노동자보다도 못한 박봉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마약판매상들은 집이 있는 엄마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학계에도 일어나는 중이다. 학계의 일자리 분포는 여러 측면에서 이분화를 겪고 있다. 안정적이고 고연봉인 정규직 교수와 강사들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연구원과 강사들이 박봉과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이 미달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계가 정부와 연구기관의 입맛에 맞춰 과학자들을 기계부품처럼 취급하면서, 과학계는 연구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격하시키게 됐고 이런 시스템에서 모든 것은 이익을 창출하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만 평가받게 됐다.

 

과학계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형적인 생태계를 만들게 되었을까. 그 한가지 대답은 과학계를 구성하는 생태계의 요소들이 결코 사회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는데서 찾아야 한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금융자본주의가 내뱉는 독기로부터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보다 결코 자유롭지 않다. 보통과학자의 싸움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결코 다르지 않다. 과학계는 어쩌면 가장 늦게 그 이유를 깨달은 집단인지 모른다. 

 

현재 미국 의생명과학계가 겪고 있는 파국의 원인은 연구비 증가 속도와 과학자 숫자의 불균형 때문이 아니다. 과학계가 상업화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림 출처 Lazebnik, Y.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계의 인력구조는 양극화되고 있다. 정규직은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증가해 절반 이상의 직업을 차지했다. 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 (aaup) 

 

※참고자료 

-Lazebnik, Y. (2015). Are scientists a workforce?–Or, how Dr. Frankenstein made biomedical research sick. EMBO reports, 16(12), 1592-1600.

-신중섭. 피케티의 ‘자본’과 불평등-고등학교 윤리교과서와 관련하여. 윤리교육연구, 41, 229-251.

-편의상 이 글에서 다루는 과학계는 의생명과학계에서의 나의 경험에 국한된 것으로 읽으면 좋겠다. 하지만 의생명과학계가 과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크기를 고려해보면, 이와 같은 과학계의 구조를 굳이 의생명과학계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희제. (2006). 과학의 상업화와 과학자사회 규범구조의 변화: 공유성과 이해관계의 초월규범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0(4), 19-47.

-Piketty, T., & Saez, E. (2014). Inequality in the long run. Science, 344(6186), 838-843.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5899.html 김우재 《플라이룸》의 1장도 참고할 것.

-Bush, V. (1995). Science, the endless frontier. Ayer Company Publishers.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과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의 원흉으로 생각하며 이런 글(본문 ※부분)을 썼다. Alberts, B., Kirschner, M. W., Tilghman, S., & Varmus, H. (2014). Rescuing US biomedical research from its systemic flaw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16), 5773-5777. 하지만 연구비를 위주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호원경 교수 등을 위주로 한 의생명과학자들이 기초과학 연구비 증액과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이 또한 임시방편의 정책일 뿐이다.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isori&id=34334

-현대 과학계는 연구비라는 자본과 논문이라는 화폐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았다. https://culturico.com/2019/05/06/the-scientific-publishing-lobby-why-science-does-not-work/

-https://blogs.lse.ac.uk/impactofsocialsciences/2013/12/11/how-academia-resembles-a-drug-gang/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계의 인력구조는 양극화되고 있다. 정규직은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증가해 절반 이상의 직업을 차지했다. https://blogs.lse.ac.uk/impactofsocialsciences/2013/12/11/how-academia-resembles-a-drug-gang/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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