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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코로나 블루 원인은 어쩌면 전자기기의 파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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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코로나 블루 원인은 어쩌면 전자기기의 파란빛?

2020.08.04 16:09
에드바르 뭉크의 ‘멜랑콜리’(1893). (제공 위키피디아 제공)
에드바르 뭉크의 ‘멜랑콜리’(1893). (제공 위키피디아 제공)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를 나타내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s)'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 여기서 블루는 물론 파란색이 아니라 우울감을 뜻한다. 

 

코로나 블루의 주원인으로는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을 꼽고 있다. 특히 은퇴한 노인들이 심각하다. 코로나 환자 수가 통제 범위에 들어온 뒤 종교 활동이 재개되는 등 다소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교류에 제약이 많다. 

 

수면장애도 코로나 블루에 기여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낮에 야외활동이나 운동이 줄고 밤늦게까지 TV나 노트북, 스마트폰을 보면서(최근 반년 사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자가 급증했다) 생체리듬이 깨져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기분도 처지기 마련이다.

 

지난 2002년 미국 브라운대 데이비드 베르슨 교수팀은 이 현상을 설명하는 길을 연 놀라운 발견을 했다. 빛의 신호에 따라 뇌의 생체시계가 일주리듬을 갖게 하는 제3의 빛수용체인 ‘감광신경절세포(ipRGC)’를 망막에서 찾은 것이다. 이전까지 빛수용체는 빛의 세기를 감지하는 막대세포와 빛이 색깔을 감지하는 원뿔세포 두 가지였다.

 

감광신경절세포에는 빛을 감지하는 분자인 멜라놉신이 존재하는데, 파란빛인 파장 480나노미터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파란빛이 어느 강도 이상 존재하는 한 감광신경절세포는 뇌의 기준 생체시계인 시교차상핵(SCN)으로 계속 정보를 보내므로 생체리듬에 혼란이 일어난다. 그 결과 수면장애가 생겨 고생하다 보면 우울해진다. 결국 부적절한 시간대의 파란빛이 ‘울적한 기분(blues)’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10년이 지난 2012년 베르슨 교수팀은 타이밍이 부적절한 파란빛이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간접 경로 외에 직접적으로도 우울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발견했다. 그리고 수년에 걸친 연구 끝에 2018년 이 경로를 규명했다. 

 

파란빛의 신호 경로를 추적한 결과 감광신경절세포의 일부가 뇌 시상의 특정 영역(pHb)으로 연결되고 이곳의 뉴런이 기분 조절에 관여하는 내측전전두피질(mPFC)과 중격의지핵(NAc)으로 가지를 뻗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당시 실험은 하루 길이가 7시간(낮과 밤이 각각 3.5시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설정 아래 이뤄졌다는 문제가 있었다.

 

밤이 되면 파란빛 정보에 예민해져

 

지난 2002년 빛의 정보가 감광신경절세포(ipRGC)를 통해 시교차상핵으로 전달돼 일주리듬(circadian phase)과 수면(sleep)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적절한 시간대의 빛은 생체시계를 교란해 수면장애를 일으키고 그 결과 기분(mood)이 우울해질 수 있다(간접 경로). 그런데 2012년 파란빛이 생체시계를 거치지 않고 기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직접 경로). ′네이처 리뷰 신경과학′ 제공
지난 2002년 빛의 정보가 감광신경절세포(ipRGC)를 통해 시교차상핵으로 전달돼 일주리듬(circadian phase)과 수면(sleep)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적절한 시간대의 빛은 생체시계를 교란해 수면장애를 일으키고 그 결과 기분(mood)이 우울해질 수 있다(간접 경로). 그런데 2012년 파란빛이 생체시계를 거치지 않고 기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직접 경로). '네이처 리뷰 신경과학' 제공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 7월호에는 하루 24시간 조건에서도 밤의 파란빛이 위의 경로로 직접 우울감을 유발함을 보여준 중국과기대(허페이) 연구자들의 동물실험 결과가 실렸다. 연구자들은 먼저 12시간은 낮(조도 200럭스의 백색광), 12시간은 밤(빛이 없는 상태)인 하루 24시간 주기의 조건에 생쥐를 뒀다. 야행성인 생쥐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활발히 움직인다. 

 

이 상태에서 밤이 시작되고 한 시간이 지난 뒤에 강한 파란빛(400럭스)을 두 시간 켠 뒤 끄는 조건으로 바꾸었다. 어두워져 돌아다니던 생쥐들은 파란빛이 비치는 두 시간 동안 움직임이 미미해졌고 파란빛이 사라진 뒤에야 다시 활발해졌다. 밤이 시작되고 1~3시간 사이 파란빛의 교란을 받았지만 나머지 9시간 동안 밤이 유지돼서인지 생체시계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조건에서 3주 정도 지내자 사람으로 치면 우울증에 해당하는 행동의 변화가 나타났다. 물에 빠뜨렸을 때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약해졌고 설탕물에 대한 선호도도 낮아졌다. 한마디로 삶의 의욕이 떨어진 것이다. 원래 밤 조건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런 행동의 변화가 3주 정도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신경 전달 경로를 추적하는 기법을 써서 감광신경절세포의 일부가 시상의 pHb를 거쳐 내측전전두피질과 중격의지핵으로 가지를 뻗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둘 가운데 중격의지핵으로 가는 경로가 부적절한 타이밍의 파란빛에 반응해 우울증에 해당하는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pHb의 신호를 받는 중격의지핵의 담당 뉴런은 생체리듬을 탄다. 낮에는 활동성이 약하고 밤에는 강하다. 그 결과 밤에 들어오는 파란빛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약물로 pHb-중격의지핵 경로를 파괴하자 생쥐는 밤에 두 시간 동안 파란빛이 켜져도 행동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pHb의 신호를 받는 내측전전두피질의 뉴런은 생체리듬을 타지 않아 낮과 밤의 파란빛에 모두 반응했다. 부적절한 타이밍의 파란빛이 유발하는 우울증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쥐는 왜 파란빛의 정보를 뇌의 생체시계뿐 아니라 기분을 조절하는 부위에도 전달하는 복잡한 시스템을 진화시켰을까. 연구자들은 이 역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진화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중안전장치라는 말이다.

 

생쥐는 잡아먹히기 쉬운 밝은 낮에는 잠을 자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밤에 깨어 먹이활동을 한다. 그런데 밤에 밝은 빛을 접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신호이므로 덜 움직이고 먹이활동도 자제하는 게 낫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감광신경절세포→pHb→중격의지핵 경로가 이런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 연구자들은 인류의 마음이 복잡하게 진화하는 과정에서 이 경로가 차용돼 부적절한 타이밍의 빛이 우울증을 일으킨다고 추정했다. 비활동성과 식욕부진은 흔히 보이는 우울증의 행동적 증후다. 

 

낮의 파란빛은 우울감 줄여줘

 

최근 중국의 연구자들은 낮과 밤이 각각 12시간인 하루 주기에서 밤의 앞부분에 두 시간 파란빛을 켜는 조건을 만들어 생체시계의 교란 없이도 생쥐에서 우울증에 해당하는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였고 이 과정에 관여하는 신경회로도 규명했다. 즉 망막에서 파란빛을 감지한 감광신경절세포(ipRGC)의 일부가 뇌 시상의 등쪽(dorsal) pHb로 신호를 보내고 여기서 중격의지핵(NAc)으로 이어진다. 밤에 활동성이 큰 중격의지핵의 담당 뉴런은 부적절한 타이밍의 빛에 반응해 기분을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신경과학’ 제공
최근 중국의 연구자들은 낮과 밤이 각각 12시간인 하루 주기에서 밤의 앞부분에 두 시간 파란빛을 켜는 조건을 만들어 생체시계의 교란 없이도 생쥐에서 우울증에 해당하는 행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였고 이 과정에 관여하는 신경회로도 규명했다. 망막에서 파란빛을 감지한 감광신경절세포(ipRGC)의 일부가 뇌 시상의 등쪽(dorsal) pHb로 신호를 보내고 여기서 중격의지핵(NAc)으로 이어진다. 밤에 활동성이 큰 중격의지핵의 담당 뉴런은 부적절한 타이밍의 빛에 반응해 기분을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신경과학’ 제공

연구자들의 추측대로 설사 사람에서도 파란빛이 기분을 울적하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타이밍의 문제다. 파란빛이 없어야 할 밤에 존재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 낮의 파란빛은 오히려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북유럽 같은 고위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낮이 극단적으로 짧은 겨울철에 계절성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낮에 강한 인공조명을 쪼여주는 게 꽤 효과가 있다. 바로 ‘빛 치료(light therapy)’다. 빛 치료 역시 감광신경절세포가 뇌에 신호를 보내 효과가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이 세포가 민감한 파란빛 영역이 중요할 것이다. 

 

지난 2009년 국제학술지 ‘우울 불안’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실제 파란빛이 같은 조도의 빨간빛보다 계절성우울증을 개선하는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빛 치료의 효과가 낮을 재현해 생체리듬을 회복하게 한 결과일 뿐인 건지 아니면 적절한 타이밍의 파란빛이 다른 경로를 통해 직접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든 효과까지 더해진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수년 사이 파란빛의 유해한 작용이 알려지면서 블루라이트 차단 기술이 널리 쓰이고 있다. 디스플레이나 야간 조명에 적용되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올해처럼 장마가 길어지면 낮에도 실내가 어두컴컴한 날이 많은 데 이 경우 실내조명을 켜야 기분이 처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파란빛 영역을 없애거나 줄인 주황색 조명을 쓰면 이런 효과가 반감될 것이다. 낮 조명과 밤 조명이 따로 필요한 이유다.

 

최근 인기가 있는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도 마찬가지다. 조사를 안 해 봐서 파란빛 차단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효과가 있다면 착용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해가 진 시간대에 쓰면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인공조명이나 디스플레이의 파란빛을 차단해주므로) 해가 뜬 시간대에 쓴다면 오히려 생체리듬을 교란할 것이다. 실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들은 안 그래도 낮에 파란빛이 부족한데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까지 쓰면 24시간 내내 어스름에서 보내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 역대 최장이라는 장마가 끝나면 모처럼 바닷가를 찾아 수평선 위아래 온통 파란빛을 실컷 바라보며 코로나 블루를 털어버려야겠다.

 

 

밤에 빛이 과도한 것만큼이나 낮에 빛이 부족한 것도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주요인이다. 특히 겨울철 낮이 짧은 고위도 지역은 영향이 커 계절성우울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최대 1만 럭스의 백색광이 나오는 ‘인공태양’을 집에 두고 ‘빛 치료’를 한다. 코로나19로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한 아이템이 아닐까. 위키피디아 제공
밤에 빛이 과도한 것만큼이나 낮에 빛이 부족한 것도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주요인이다. 특히 겨울철 낮이 짧은 고위도 지역은 영향이 커 계절성우울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최대 1만 럭스의 백색광이 나오는 ‘인공태양’을 집에 두고 ‘빛 치료’를 한다. 코로나19로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한 아이템이 아닐까. 위키피디아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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