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이덕환의 과학세상] 바라카 원전의 시운전을 지켜보며

통합검색

[이덕환의 과학세상] 바라카 원전의 시운전을 지켜보며

2020.08.05 14:00
 아랍에미리트원자력공사(ENEC) 직원들이 자국의 첫 원자력발전소인 바라카 1호기가 시운전에 들어가기 전 손을 들어 숫자를 세고 있다. 바라카 원전은 2009년 한국이 수출한 첫 원자력발전소로 수도 아부다비 인근에 건설되고 있다. ENEC 홈페이지 제공
바라카 원전은 2009년 한국이 수출한 첫 원자력발전소로 수도인 아부다비 인근에 건설되고 있다. 사진은 아랍에미리트원자력공사(ENEC) 직원들이 자국의 첫 원자력발전소인 바라카 1호기가 시운전에 들어가기 전 손을 들어 숫자를 세고 있는 모습이다. ENEC 홈페이지 제공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 1호기가 시운전에 성공했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APR-1400의 첫 해외 수출이라고 온 나라가 들썩했던 것이 2009년 12월이었다. 그런데 10년 사이에 세상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바라카 원전의 완공을 자축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유구무언이고, 언론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텅 비어있는 바라카 원전의 전경이 담긴 사진과 ‘이르면 연내에 상업용 가동에 들어간다’는 짤막한 단신이 고작이다. 

 

떫은 감을 떠안겨버린 심정

 

바라카 원전은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km 떨어진 뜨거운 사막 위에 세워졌다. ‘한국형 차세대 원전’(APR-1400) 4기의 발전 용량은 총 5.6 기가와트(GW)다. UAE 전력 수요의 25%를 생산한다. 이란을 제외한 중동 아랍권에서는 처음 가동되는 원전이다. 지난 3월에 핵연료를 장전했고, 이제 정상 가동을 위한 임계 상태에 도달했다. 앞으로 발전소의 출력을 높이고, 송전 선로의 성능만 확인하면 본격적인 상업용 전력생산이 시작된다. UAE에게는 그야말로 ‘신의 축복’(바라카)이 실현되는 셈이다.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뜨거운 사막에서의 대규모 토목 공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리비아의 대수로도 건설했고,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도 지었다. 그러나 바라카 원전은 차원이 다르다. 단순한 토목 공사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원전을 설계‧시공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프랑스‧러시아‧중국‧일본 정도가 전부다. UAE와 같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서의 원전 건설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사기간도 맞췄고, 예산도 초과하지 않았다. 기술상의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 내린 셈이다.


그런데 입맛이 몹시 떨떠름하다. 끔찍한 사고의 위험 때문에 우리 자신도 쓰지 않고, 폐기하겠다는 원전을 멀쩡한 남의 나라에 지어준 것이다. 마치 우리는 떫어서 못 먹을 감을 온전하게 제 값을 받고 남에게 팔아버린 느낌이다. 우리에게 위험하다면, 남에게도 위험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위험하지만, 남에게는 ‘신의 축복’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결국 우리가 지어놓은 바라카 원전의 유지‧보수는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UAE가 전문 인력도 사라지고, 부품 시장도 붕괴될 우리에게 원전의 미래를 맡겨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이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행보가 황당하다. 올 12월에 시작되는 체코 원전 입찰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체코를 직접 찾아가겠다고 한다. 마치 국가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은 결연한 기세다. 그런데 한수원에서 ‘원자력’을 빼고, 신재생 전문업체로 거듭나겠다고 법석을 떨었던 인물이 바로 정 사장이다.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 과정에서 법과 상식에 어긋나는 꼼수를 썼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원 감사도 받고 있다. 그런 인물이 체코에 수출할 한국형 원전 APR-1000의 유럽사업자인증(EUR) 인증도 추진하고, 우리 원전산업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한다. 양심과 영혼을 잃어버린 관료의 어쭙잖은 객기가 혀를 찰 지경이다.  

 

단감을 만드는 지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서 건설 중인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의 전경이다. 한국전력 제공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에서 건설 중인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의 전경이다. 한국전력 제공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도대체 입에 넣을 수도 없을 정도로 떫은맛이 강한 감에서도 감춰져 있던 단맛을 살려내는 절묘한 기술이 있다. 꽁꽁 얼어버린 상태로 장기간 놓아두는 전통적인 탈삽법은 너무 어설프다. 자칫 감이 통째로 썩어버릴 수도 있다. 떫은 타닌을 불용성으로 빠르게 변환시켜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적당히 따뜻한 물에 넣어두는 방법도 있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는 전혀 다른 기술도 있다. 그런 기술을 쓰지 않으면 달콤한 감 맛을 즐길 수 없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끔찍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지레 겁을 먹는 것은 비겁하고, 퇴행적이고, 패배주의적이다.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고품질의 값싼 전력을 넉넉하게 공급해주는 ‘바라카’의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전을 설계‧시공하고, 원전을 안전하게 가동해왔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술이 안전과 환경을 지켜줄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안전과 환경은 끊임없이 기술과 제도를 개발하고, 투자를 계속해야만 지켜지는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는 기술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엄청난 규모의 화석연료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신의 축복’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UAE의 진취적인 의지와 적극적인 자세를 주목해야 한다. UAE의 그런 모습이 낯선 것도 아니다. 10년 전 우리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우리는 반세기만에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을 개발해낸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꿈에서도 잊지 말아야 하는 명백한 역사적 팩트다. 


신재생의 극단적인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필요하다. 친환경성이 확인‧검증된 원전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뚝딱하고 만들어주는 요술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선다고 우리에게 ‘신의 축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바라카 원전을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를 위한 도약의 발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2 + 4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