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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박쥐에게도 백신을 접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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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박쥐에게도 백신을 접종해야 할까

2020.08.19 14:52
러시아가 개발해 세계 최초로 등록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티크V’. 양산 체제에 들어가 임상 3상을 진행하는 동시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한다. 러시아 보건부 제공.
러시아가 개발해 세계 최초로 등록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티크V’. 양산 체제에 들어가 임상 3상을 진행하는 동시에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한다. 러시아 보건부 제공.

사람 마음이란 정말 간사한 것 같다. 지난 11일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등록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런데 임상 3상을 하기도 전에 러시아 보건당국이 서둘러 승인을 한 것이고 이름도 유치하게 ‘스푸트니크V’라고 지었다는 사실을 알고 ‘푸틴의 러시아’답다고 혀를 차며 넘어갔다. 그런데 지난 며칠 사이 수도권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2차 대유행 위기감이 높아지니 러시아 백신이 궁금해졌다.

 

좀 알아보니 “물과 다름없는 엉터리 물질” 같은 일부 반응은 심한 것 같다. 이들이 개발한 건 아데노바이러스를 벡터(운반체)로 이용하는 재조합 백신으로, 아데노바이러스 게놈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를 넣은 것이다. 아데노바이러스는 이미 유전자치료에 쓰이고 있어 벡터로서의 안전성은 검증된 상태다. 결국 유전자 치료를 위해 개발된 방법을 백신에 적용한 것으로, 러시아 말고도 현재 20여 곳에서 이 방식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무시하고 있지만 브라질, 필리핀, 베트남 등 개도국 20개 나라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백신이 도착하면 내가 먼저 맞겠다”고 밝힌 걸 보면 헛소문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러시아와 이들 나라 사람들이 선진국 사람들보다 먼저 백신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한국 기업이 러시아 백신을 위탁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들리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보건당국이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러시아 백신을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아무리 빨라도 올해 안에 백신 접종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백신이 나오더라도...

 

그런데 지난 6일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팬데믹의 미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니 백신이 나오더라도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우세하다. 접종을 해도 면역력이 1년 이내에 사라져 독감 백신처럼 매해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OC43과 HKU1)에 대한 면역력은 약 40주가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지난겨울 감기에 걸려도 올겨울 또 걸리는 것이다. 

 

다만 코로나19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운 사스바이러스의 경우 감염된 뒤 만들어진 항체의 수치가 5개월 가량 유지되다 2~3년에 걸쳐 서서히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따른다면 격년으로 백신을 맞으면 되겠지만 고령자는 매년 접종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MMR(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처럼 ‘IC(독감, 코로나) 백신’이라는 이름의 혼합 백신이 나오지 않을까.

 

해마다 맞춤형 백신이 개발돼 많은 사람들이 접종받아도 독감으로 매년 평균 40만 명이 사망하는 걸 감안할 때 코로나 역시 백신이 나와도 매년 이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촌 보건이라는 수레에 무거운 짐이 하나 더 얹어진 셈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말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야생동물에 접종해 사전 차단

 

스스로 퍼지는 백신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전염성 백신(transmissible vaccine)으로 증식력과 전염력이 유지된 생백신이다. 따라서 야생동물 일부를 접종한 뒤 풀어주면 집단면역이 일어날 수도 있다(위). 다른 하나는 묻히는 백신(transferable vaccine)으로 백신을 접종한 동물을 그루밍한 주변 동물로 퍼진다. 다만 백신 자체의 전염력이 없기 때문에 일회성에 그친다(아래).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스스로 퍼지는 백신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전염성 백신(transmissible vaccine)으로 증식력과 전염력이 유지된 생백신이다. 따라서 야생동물 일부를 접종한 뒤 풀어주면 집단면역이 일어날 수도 있다(위). 다른 하나는 묻히는 백신(transferable vaccine)으로 백신을 접종한 동물을 그루밍한 주변 동물로 퍼진다. 다만 백신 자체의 전염력이 없기 때문에 일회성에 그친다(아래).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사람이나 가축에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야생동물에게 선제적으로 백신을 투여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제안을 담은 논문이 최근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진화’ 사이트에 실렸다. 가축도 아니고 야생동물에게 백신 접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일까. 

 

보통 백신은 접종받는 사람 또는 가축이 병원체에 면역력을 얻게 한다. 집단면역력을 획득하려면 구성원의 다수가 접종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야생동물에게 이런 식으로 백신을 접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각각 미국 아이다호대의 생물학자와 수학자인 두 저자가 논문에서 말하는 건 ‘스스로 퍼지는(self-diseminating) 백신’이다. 야생동물을 포획해 접종한 뒤 풀어주면 서식지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백신을 퍼뜨려 집단면역을 갖게 한다는 전략이다.

 

스스로 퍼지는 백신은 두 종류가 있다. 먼저 ‘전염성 백신(transmissible vaccine)’으로 쉽게 말해 전염성이 유지된 생백신이다. 사람에게 붙잡혀 살아있는 바이러스인 백신을 접종받은 야생동물의 체내에서 증식한 바이러스가 주변 동물들에게 퍼지는 방식이다. 접종받거나 감염된 개체가 무증상 또는 경증인 상태에서 항체를 형성해 병독성이 강한 야생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돼 결과적으로 사람이나 가축에게 옮길 위험성이 낮아진다.

 

다음은 ‘묻히는 백신(transferable vaccine)’으로 야생동물의 몸에 묻히는 방식이다. 백신 자체의 전염성은 없지만 자기 털이나 동료의 털을 핥는 그루밍(grooming) 습성이 있는 동물들은 이 과정에서 입에 묻은 백신을 삼켜 접종이 된다. 전염성 백신보다는 지속성이 떨어지지만 박쥐처럼 한정된 공간에 고밀도로 모여 살면서 동료를 그루밍하는 동물에게는 꽤 효과가 있고 무엇보다도 안전하다. 전염성 백신의 경우 바이러스 변이로 병독성이 높아지면 예방이 아니라 화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염성 백신은 생백신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약독백신(attenuated vaccine)으로 바이러스를 특수 조건에서 배양해 게놈에 변이를 일으켜 독성을 낮춘 바이러스다(왼쪽). 다른 하나는 재조합벡터백신(recombinant vector vaccine)으로 벡터바이러스 게놈에 병원체의 항원 유전자를 넣어 만든다(오른쪽).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전염성 백신은 생백신으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약독백신(attenuated vaccine)으로 바이러스를 특수 조건에서 배양해 게놈에 변이를 일으켜 독성을 낮춘 바이러스다(왼쪽). 다른 하나는 재조합벡터백신(recombinant vector vaccine)으로 벡터바이러스 게놈에 병원체의 항원 유전자를 넣어 만든다(오른쪽). 네이처 생태학&진화 제공.

재조합백신이 유망

 

전염성 백신에 쓰이는 생백신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약독백신(attenuated vaccine)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생백신이다. 고병원성 바이러스를 특수 조건에서 반복 배양해 병독성이 낮은 바이러스를 얻는 과정에서 보통 증식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전염성 백신이 되려면 병독성은 낮으면서 증식력은 유지하는 바이러스를 선별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성공해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야생동물에 퍼지는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병독성이 높아지면 더이상 백신이라고 부를 수 없다.

 

실제 백신의 역사에서 의도치 않은 ‘전염성 백신’의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가 있다. 바로 경구용 소아마비 생백신이다. 이 경우 약독백신임에도 전염성을 잃지 않아 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도 백신을 맞은 사람으로부터 감염돼 면역력을 갖는 사례가 보고됐다. 처음엔 일석이조라고 좋아했지만 이런 식으로 바이러스가 (백신으로서) 퍼져나가는 와중에 병독성을 회복한 변종이 등장해 (병원체로) 퍼지면서 아이티/도미니카(2000-01년), 필리핀(2001년), 마다가스카르(2001-02년) 등지에서 백신 유래 소아마비가 유행했다.  

 

약독백신을 쓰는 건 아무래도 잠재적인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안전성 측면에서 재조합벡터백신(recombinant vector vaccine)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조합벡터백신은 병원성 바이러스에서 항체를 유발하는 부분의 유전자를 전염성이 있는 벡터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넣어(재조합) 만든 백신이다. 앞서 러시아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바로 재조합벡터백신이다. 다만 이 경우는 벡터로 쓰이는 아데노바이러스가 복제를 할 수 없게 게놈이 변형된 상태이므로 전염성이 없다.  

 

토끼 대상으로 현장 실험

 

유럽에 서식하는 굴토끼는 1950년대 의도적으로 들여온 점액종바이러스와 1980년대 중국에서 유입된 토끼출혈병바이러스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지난 2001년 스페인 연구자들은 두 바이러스에 대한 전염성 백신을 만들어 현장 실험으로 효과가 있음을 보였다. 위키피디아 제공.
유럽에 서식하는 굴토끼는 1950년대 의도적으로 들여온 점액종바이러스와 1980년대 중국에서 유입된 토끼출혈병바이러스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지난 2001년 스페인 연구자들은 두 바이러스에 대한 전염성 백신을 만들어 현장 실험으로 효과가 있음을 보였다. 위키피디아 제공.

스스로 퍼지는 백신은 흥미로운 개념이지만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실행된 적은 없다. 다만 2001년 작은 섬에서 야생 토끼를 대상으로 현장 실험을 진행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바가 있다. 

 

1950년대 프랑스 정부는 야생 굴토끼의 개체 수가 너무 늘어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고 판단해 점액종바이러스를 들여와 뿌려 개체 수를 조절했다. 점액종바이러스는 미주대륙에 서식하는 솜꼬리토끼를 자연숙주로 하는 바이러스로 여기서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굴토끼에게는 치명적인 점액종을 유발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바이러스가 원래 숙주인 혹멧돼지에게는 별 게 아니지만 돼지에게는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점액종바이러스가 퍼진데다 1980년대 중국에서 토끼출혈병바이러스까지 들어오자 유럽의 굴토끼 개체 수가 급감한 것은 물론이고 집토끼도 감염돼 폐사하며 피해가 커졌다. 과학자들은 부랴부랴 점액종바이러스와 토끼출혈병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 집토끼에게 접종해 위기를 넘겼다. 

 

1990년대 후반 스페인의 과학자들은 전염성 백신을 만들어 야생의 굴토끼에게 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검토해보기로 했다. 이들은 병원성을 줄인 점액종바이러스를 벡터로 써서 점액종바이러스 게놈에 토끼출혈병바이러스의 항원인 캡시드 단백질 유전자를 넣은 약독백신이자 재조합백신을 만들었다. 백신 하나로 두 바이러스를 막는 전략이다.

 

연구자들은 스페인 연안의 작은 섬에 백신을 접종한 토끼 76마리와 접종하지 않은 토끼 71마리를 풀었다. 32일 뒤 접종하지 않은 토끼 25마리를 붙잡아 조사한 결과 56%에서 항체가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염성 백신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이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재생산지수가 1.4~2.1로 계산됐다.

 

지난해 ‘네이처 생태학&진화’에는 박쥐를 대상으로 묻히는 백신의 유효성을 간접적으로 검증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영국과 미국, 페루의 공동연구자들은 남미의 골칫거리인 흡혈박쥐 매개 광견병을 해결할 방법으로 묻히는 백신을 주목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흡혈박쥐가 옮기는 광견병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가축 피해 규모는 연간 600억 원에 이른다. 현재는 독약을 풀어 흡혈박쥐 개체 수를 조절하는 전략을 쓰고 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묻히는 백신의 가능성을 보는 실험이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진짜 백신 대신 로다민B라는 형광색소를 페루의 동굴에서 사로잡은 박쥐들의 털에 칠한 뒤 풀어줬다. 동굴에서 다른 박쥐가 로다민B가 칠해진 박쥐를 그루밍하는 과정에서 입 주변에 묻으면 형광을 띤다. 한 달 뒤 포획한 박쥐에서 로다민B가 검출된 박쥐의 수는 칠한 박쥐 수의 2.6배였다. 이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재생산지수가 1.5~2.1로 나왔다. 연구자들은 광견병바이러스 백신을 묻히는 백신의 형태로 만들어 박쥐에 접종하면 광견병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스로 퍼지는 백신’은 매력적인 방법이고 효과도 꽤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쓰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신종 전염병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논문의 저자들도 언급했듯이 말썽의 소지가 있는 약독백신보다는 좀 더 안전한 재조합벡터백신 쪽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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