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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코로나 시대 우연히 베푼 친절이 삶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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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코로나 시대 우연히 베푼 친절이 삶을 지탱한다

2020.09.05 14: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처음 보는 생소한 바이러스 탓에 올해 봄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일들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사재기 열풍이 심해져 사회적 약자들은 화장지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노인들의 경우 남들처럼 많은 양의 물건을 잔뜩 사서 나를 힘도 없거니와 바이러스에 노출될 경우 위험도도 훨씬 커서 젊은 자녀들이 나이 많은 부모를 위해 마트에 다녀오는 일이 흔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노인들에게 기꺼이 심부름을 해줄 수 있는 ‘가까이 사는 젊은 자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여성이 마트에 도착해서 주차하던 중 옆에 주차된 차에 앉아있던 노부부를 보았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쇼핑을 끝낸 후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쇼핑을 마치기까지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노부부의 차는 그대로 있었고 그분들 또한 그대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 여성은 혹시 부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노부부가 탄 차에 다가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부부의 사연은 이러했다. 집에 먹을 것이 다 떨어져 식료품을 사야 하는데 혹시라도 감염이 될까 무서워서 마트 안에 못 들어가겠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벌써 세 시간을 주차장에서 가만히 앉아 도움을 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여성은 기꺼이 심부름을 해주었다. 만약 이 여성이 용기를 내서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더라면 이 부부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렸을지 모를 일이다. 


한 눈에 봐도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사람들 뿐 아니라 어떻게든 씩씩하게 혼자서 버텨오던 사람들 또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대학생이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었다. 공교롭게 같은 시간에 아르바이트 일이 겹쳐 한 쪽에서는 강의를 켜 놓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금씩 업무를 보고 있었다. 교수는 이 학생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를 콕 집어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만 집중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물론 학생도 그러고 싶었지만 문제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학비를 벌고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에 하던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힘들게 구한 일이라서 원하는대로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물론 수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듣는 이가 집중하지 않는 것이 매우 거슬리는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면 학생이 크게 상처받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도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 못지 않게, 또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시기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노부부를 도운 여성처럼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사람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는 친절 마인드를 장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마트에서 혹시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입구에 비치되어있는 소독제로 카트 손잡이를 깨끗이 닦고 본격 장을 보려고 돌아섰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혹시 카트 필요하시면 가져가시라고 하자 연신 고맙다며 기뻐하셨다. 


또 한 번은 한 낮에 땡볕에서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지나가던 노숙인을 만났다. 혹시 얼마 도와줄 수 없냐는 물음에 주머니를 뒤져 작게나마 보탰다. 요즘같은 때 마스크도 없이 위험해서 어떡하냐고 안전하시길 바란다고 이야기하자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불우한 사건들로 인해 직업을 잃고 이렇게 되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일을 못 하게 된다면 당장 다음달 집세가 위태로워질테고 아마 1년도 채 안 되어 거리를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분과의 차이점이라면 나를 돌봐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포함해서 아직까지 과분하게 운이 좋았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얄궂게도 할 수 있는 것이 0은 아니어서 여전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가진 운이 다해 가장 약한 상태가 되었을 때 누가 내게 안부라도 물어주길 바라듯, 쉬지 않고 안부라도 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무리 힘들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쉽게 스러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컨대 같은 병에 걸려도 곁에 누군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예후가 좋고 똑같이 실직을 하더라도 곁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더 재취업이 빠른 현상이 나타난다. 


친밀한 관계들만 삶을 지탱해줄 것 같지만 스쳐지나가는 우연한 친절도 삶을 움직인다. 지하철에서 처음 본 낯선 타인과의 인사 한 마디에도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분이 둥실둥실 좋아진다는 연구가 있었다. 최근 사이콜로지컬 불리틴(Psychological Bulletin) 저널에 실린 연구에 의하면 수많은 기존 연구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계획적으로 하는 봉사활동 뿐 아니라 우연히 스쳐지나가듯 하는 선행 또한 (때로는 계획적인 봉사보다 더 크게) 큰 행복과 삶의 의미감, 또 자아실현과 관련을 보였다고 한다.


대체로 약하고 무력한 인간이지만 작은 손길 하나만 있으면 무한동력 배터리라도 장착한 듯 다시 살아날 힘을 얻는 것이 또 우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어려움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일 거다. 작은 친절에도 모두가 크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축복이다. 

 

※참고자료

-Cohen, S. (1988). Psychosocial models of the role of social support in the etiology of physical disease. Health Psychology, 7, 269-297.
-Hui, P. H. (2020, July 27). Rewards of Kindness? A Meta-Analysis of the Link between Prosociality and Well-being. Retrieved from osf.io/2ecvp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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