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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유전자은행은 원자폭탄 만든 연구소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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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유전자은행은 원자폭탄 만든 연구소에서 시작했다

2020.09.10 15:57

 

월토 고드의 모습.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제공
월터 고드의 모습.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제공

“제 생각에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뿌리는 유전자은행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유전자은행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유전체계획의 최종산물이 결국은 모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라는걸 알게 해줬으니까요.”  -엘크 조단,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하며 월터 고드에게 쓴 편지 중에서⁠

 

“분석이란 측면에서 볼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더 많은 염기서열 데이터를 얻게 될 수록, 연구를 위해 더 많은 아이디어가 생겨날 수 있어요. 유전자은행에게 주어진 가장 힘들지만 반대로 가장 보상을 가져다줄 임무가 이 점이라는건 의심할 필요도 없어요” -월터 고드, 유전자 은행에 대한 설명⁠

 

이제 유전자은행은 생물학자들의 연구에서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유전자은행의 염기서열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면, 분자생물학자들은 물론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도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DNA 염기서열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라는 개방성과 접근성, 그리고 누구도 그 정보를 독점할 수 없다는 공평성의 원칙이 현재의 유전자은행을 만든 핵심적인 규범이었다. 역설적이지만, 현재의 유전자은행이 시작된 곳은 미국 뉴멕시코주에 위치한 로스 앨러모스국립 연구소였다. 맨하탄 계획으로 세계 최초의 핵폭탄을 개발한 장소다.

 

맨하탄 계획의 물리학자에서 유전자은행의 생물학자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이다. 위키미디어 제공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한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이다.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는 맨하탄 계획으로 세계 최초의 핵폭탄을 개발한 장소다. 위키미디어 제공

맨하탄 프로젝트가 끝나고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는 이론 생물학 그룹이 만들어지는데 이 그룹을 이끌던 과학자는 조지 벨이다. 20세기 중반 맨하탄 계획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물리학자들은 그 죄책감을 벗기 위해 생물학으로 이주했고, 그들과 생물학자들의 공동연구로 분자생물학이 탄생했다는건 잘 알려져 있다⁠. 벨 또한 맨하탄 프로젝트가 끝나자 그 죄책감과 과학적 호기심의 중첩으로 생물학으로 이동했고, 특히 방사선 유전학과 컴퓨터를 이용한 생물학 등에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DNA 염기서열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관심은 냉전 시대가 열린 로스 앨러모스가 핵폭탄으로부터 연구의 방향을 틀면서 생긴 기회이기도 했다.

 

월터 고드는 이론 물리학자로 경력을 시작한 로스 앨러모스의 이론 생물학자였다. 은퇴하기 직전까지 유전자은행의 설립과 운영에 모든 시간을 바친 고드는 록펠러 미팅 직후 국가 차원의 DNA 염기서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다는 말을 동료들에게 듣자마자, 그 장소는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아마도 고드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가 원래 맨하탄 계획에서 디지털 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 중심의 문제들을 숫자와 통계적 기법으로 풀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고드가 물리학자로 수행하던 작업과 유전자은행의 구축 사이에는 다루는 물질의 차이를 제외하곤 방법론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게다가 고드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연구소에서 안정적인 연구원의 지위를 가진 저명한 과학자였고, 생물학계에서는 외부인이었다. 데이호프처럼 서열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경험이 없던 고드가 이 일에 바로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분야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던 셈이다.

 

이론 물리학자로 우주선에서 쏟아져 내리는 입자들의 위치를 디지털 컴퓨터를 이용해 통계적으로 푸는 작업을 하던 고드는, 1960년대부터 분자생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고드가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이 하던 물리학적 문제들을 제쳐둔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물리학에서 사용했던 방법론과 도구를 들고 생물학에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찾아 헤맸다. 수많은 데이터가 존재하고, 그 데이터를 이용해 풀어야 하는 문제라면, 고드가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아무런 장애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전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로스 앨러모스의 연구자들은 국가에서 하달되는 연구가 아니라, 호기심을 풀기 위해 하는 연구를 시작할 여유가 생겼다.

 

로스 앨러모스는 맨하탄 계획을 수행할 때부터 연구비의 일부를 의학과 생물학에 투자해 왔는데, 그건 원자폭탄으로부터 발생하는 방사선 때문이었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방사선 유전학은 특히 DNA를 다루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건 방사선이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멀러 등의 초파리 유전학자에 의해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로스 앨러모스 미국립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맨하탄 계획을 완성하면서 학제간 연구를 오랜기간 경험해본 인재들이었다. 그들에게 생물학의 문제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이 아니었다.

 

고드의 생물학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초반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를 방문했던 분자생물학자 레오나드 레만에 의해 촉발된다. 레만은 고드에게 생물학에 혁명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주면서, 당시 분자생물학자들에 의해 개척되고 있던 DNA를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설명해주었다. 1964년 레만이 속해 있던 미국 콜로라도대로 안식년을 떠난 고드는 본격적으로 덴버에서 생물학적 문제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고드가 DNA 염기서열을 연구했던건 아니다. 그는 원래 입자의 흐름을 예측하던 물리학자였기에, 처음에는 물리화학자와 함께 생물학적 분자의 이동과 흐름을 주로 연구했고, 그 연구들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고드에게 중요한건 생물학의 특정한 분자가 아니라, 그가 물리학에서 적용했던 수학적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 뿐이었다.

 

여전히 그렇지만 당시에도 대규모의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생물학자는 거의 없었고, 특히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생물학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학적 생물학은 주류 생물학에서 소외되어 있었지만, 로스 앨러모스에서 고드의 지위는 마음껏 학제간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웠다.

 

물리학자들이 생물학에서 발견한 성배

 

 로스 앨러모스에서 미팅 중인 은퇴 전 월터 고드의 모습.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제공
로스 앨러모스에서 미팅 중인 은퇴 전 월터 고드의 모습.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제공

1974년경까지 고드와 로스 앨러모스의 T-10 이론생물학 및 생물물리학 그룹이 관심을 가진 주제는 주로 면역학이나 방사선 유전학에 컴퓨터와 수리통계적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분자생물학의 중심부에서는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과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빠른 속도로 해독되고 있었고, 생물학자들은 이 정보를 사용해 생물종의 진화적 관계를 연구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서열정보가 많아질 수록, 이 정보를 진화적 해석에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넓어진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에게 서열정보는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일 수 있다. 첫째, 서열정보는 생물학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여겨질 수 있었다. 즉, 입자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추적해온 물리학자들에게 생물학에서도 비슷한 기본단위가 주어진 셈이다. 둘째, 디지털화될 수 있는 서열 정보는 물리학자들에게 익숙한 수리통계학적 기법과 컴퓨터 도구가 사용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드를 비롯한 T-10 그룹의 과학자들은 생물학의 서열정보가 물리학에서 개발된 다양한 도구와 기법들을 적용하기 쉬운 분야임을 즉각 알아챘고, 아주 빠르게 염기서열 정보를 비교하는 알고리듬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컴퓨터를 가지고 염기서열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그룹은 로스 앨러모스를 제외하곤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고드와 그의 제자들은 물리학에서 개발된 몬테 카를로 방법론 등을 빠르게 적용해서, 염기서열에 숨겨져 있는 패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복잡해 보이는 자연으로부터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물리학자로의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매혹시키는 주제다. 고드가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개발했던 수 많은 통계적 기법과 컴퓨터 알고리듬이, 유전자의 염기서열 패턴을 분석하는 용도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유전자은행은 고드의 이런 노력들이 담긴 로스 앨러모스 내의 서열 데이터베이스에서 시작되었다.

 

고드는 염기서열 정보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염기서열을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모은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도구들을 끊임없이 개발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1979년 염기서열을 모으고, 저장하고, 분석하고, 공유하는 도구의 개발을 시작한다. 고드가 물리학에서 경험했던 데이터 관리 기법이 유전자은행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유전자 염기서열을 가지고, 고드와 그의 동료들은 패턴 분석과 데이터 관리라는 물리학에서 유래한 패러다임을 적용해, 완전히 새로운 학문분야를 만들어낸 것이다.

 

1979년 고드와 그의 동료들은 미국립보건원에 연구계획서를 제출한다. 그가 로스 앨러모스에 구축한 유전자은행을 확장하기 위한 계획이 담긴 문서였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를 이용해 염기서열 정보에 접근하려는 생각을 가진 연구자들이 여럿 존재했다. 미국립보건원(NIH)의 엘빈 캐벗은 면역글불린의 서열정보를 모아두었고, 스탠퍼드대 더글라스 브루트랙 교수는 독자적인 염기서열 콜렉션을 가지고 있었다.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 데이터베이스는 데이호프가 앞서나가 있었고, 특히 데이호프의 데이터베이스는 그가 구축한 아틀라스를 통해 생물학자들에게 공유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연구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열 정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밖에 없었던 데이호프와는 달리, 고드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연구소에서 오직 과학적 목적에만 집중하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어쩌면 데이호프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고드와 로스 앨러모스가 미국립보건원(NIH)의 유전자은행으로 선택된 건, 두 과학자의 성향 차이가 아니라 두 과학자가 놓여 있던 연구환경의 차이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데이호프는 부족한 연구비를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자금을 찾아 헤매야 했던 반면, 고드는 상대적으로 연구비가 풍족한 국립연구소에서 자금난에 허덕이지 않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Genbank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유전자 염기서열의 모습.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제공
초창기 Genbank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유전자 염기서열의 모습.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제공

핵폭탄, 컴퓨터 그리고 인간유전체계획

 

“불행하게도, 우리 역사는 조셉 매카시 상원 의원 시대에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정성과 정의라는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를 무시한 위험의 과장된 사례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공포의 흐름은 항상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피해를 입히며,이 경우 표면적으로 보호되고있는 군사 과학 기관에 구체적이고 계산할 수없는 피해를주고 있습니다.” -월터 고드, 핵무기 개발로 국가의 조사를 받는 연구원을 위한 선언 중에서⁠

 

20세기 중반,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모인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미국은 마침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나는 이 세계를 산산조각 내는 죽음의 신이 되었다.” 1945년 오펜하이머가 최초의 핵실험을 마치고 떠올린 힌두교 경전의 내용이라고 한다⁠. 부유한 독일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나 초엘리트 코스로 경력을 쌓았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정치적인 문제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던 상아탑의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1930년대 나치가 유대인을 탄압하고, 미국은 대량실업으로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자신의 동생이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는 이상적인 공산주의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의 이상적인 공산주의 신념과 현실 공산주의 국가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 그는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고, 1942년엔 맨하탄 계획에서 과학적∙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소장으로 수천명의 과학기술자들을 지휘하게 된다.

 

⁠1945년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오펜하이머 뿐 아니라 그 작업에 참여했던 수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지고 얼마 안되어 소장직을 사임한 그는 이후 대통령 직속기구인 ‘원자력 자문위원회’의 의장 직을 맡아 원자력 정책에 관한 국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상황에서 미국은 극우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트루먼 대통령은 수소탄 개발을 오펜하이머에게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이 요구를 거절하고 수소탄의 개발이 정치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강력한 의견을 표명한다.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1950년대 초반, 수소탄 연구를 거부하는 오펜하이머의 과거 공산주의자 이력이 재조명되며, 그는 FBI로부터 수사를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1953년엔 오펜하이머가 소련의 스파이라는 첩보가 미연방수사국(FBI)에 전달되었고, 이 문제로 소집된 국회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는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이 청문회 결과 오펜하이머는 원자력 위원회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는 몰락했다. 1967년 존슨 대통령은 프린스턴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여생을 보내던 그에게 페르미 메달을 수여했지만, 그는 이 상을 수여하고 얼마뒤 후두암으로 사망한다⁠. 

 

비슷한 시기에,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분자생물학으로 분야를 옮긴 이유도 원자폭탄과 완전히 무관하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고 물리학을 떠났다 고백했고, 물리학의 방법론을 흡수한 생물학은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며 이후 과학의 주도권은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넘어오는 계기가 마련된다. 물론 원자폭탄이 물리학자들의 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모두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당시 젊은 생물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던 양자물리학자 슈뢰딩거나, 닐스 보어의 친구였지만 생물학에서 새로운 양자를 찾기 위해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분자생물학자가 된 막스 델브뤽 같은 학자는 물론,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단지 호기심으로 DNA 이중나선 구조에 관심을 가졌던 프랜시스 크릭 같은 학자들이 존재한다.

 

20세기 중반의 과학계는 맨하탄 계획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던 물리학의 성공과, 그 원자폭탄의 결과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떠앉아야할 책임에 대한 인식이 싹튼 시기였고, 전쟁이 끝나고 배너바 부시 등이 주도한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의 원칙 아래 미국이 이제 물리학이 아닌 의학에 큰 투자를 결심했던 시기였다. 

 

유전자은행은 원자폭탄을 성공시킨 바로 그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관여했던 이론 물리학자에 의해, 원자폭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바로 그 컴퓨터와 수학적 도구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면 아마 바로 이런 것일지 모른다. 월터 고드가 원자폭탄 개발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에 휘몰아쳐 그의 연구원 중 한 명이 고초를 당할 때, 그를 위한 성명서를 작성해 발표한 적이 있다. 적어도 그는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지만, 매커시즘과 같은 파시즘의 징후에 저항할 정도의 상식과 윤리가 있는 과학자였던 셈이다.

 

월터 고드가 구축한 유전자은행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10여년이 지난후에 드러났다. 1990년대부터 분자생물학자들은 유전체 염기서열 데이터베이스를 연구의 필수적인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유전자은행은 인간유전체계획과 같은 거대 생물학 프로젝트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0년 11월 월터 고드가 죽었을 때, 그의 부고는 미국 에너지부(DOE)의 인간유전체 뉴스라는 잡지의 귀퉁이에 짧게 소개되었을 뿐이다. 이 부고에는 그의 삶이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넘어온 이방인이었지만, 생물학의 도약에 어쩌면 가장 큰 공헌을 했고, 이방인이었기에 영웅이 아니라 보통과학자로 남은 인물이었다.

 

“월터 고드, DNA 염기서열 분석의 선구자가 2000년 11월 2일 사망했다.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에서 이론 물리학자로 활약한 이후, 그는 최초의 DNA 데이터베이스 젠뱅크를 만들었고, 이는 인간유전체계획의 공식화 과정과 성공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월터 고드의 부고가 실린 잡지의 짤막한 소개글. 미 에너지부 게놈연구소 제공
월터 고드의 부고가 실린 잡지의 짤막한 소개글. 미 에너지부 게놈연구소 제공

⁠※ 관련자료

-From Bomb to Bank: Walter Goad and the Introduction of Computers into Biology, In book: Outsider Scientists: Routes to Innovation in Biology, Chapter: 7, Publishe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ditors: Michael Dietrich and Oren Harman, pp.128-146
-Walter Goad, “GenBank – and its promise for molecular genetics”, Los Alamos Science, Fall 1983 https://permalink.lanl.gov/object/tr?what=info:lanl-repo/lareport/LA-UR-83-5143
-From Bomb to Bank: Walter Goad and the Introduction of Computers into Biology, In book: Outsider Scientists: Routes to Innovation in Biology, Chapter: 7, Publisher: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ditors: Michael Dietrich and Oren Harman, pp.128-146
-이 과정은 사이언스타임즈에 연재된 김우재의  《미르 이야기》 를 참고할 것.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조 힌 치오,염색체와 매카시즘,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9203
-로스 앨러모스에서 미팅 중인 은퇴 전 월터 고드의 모습 그림 출처 https://permalink.lanl.gov/object/tr?what=info:lanl-repo/lareport/LA-UR-83-5143
-Strasser, B. J. (2008). GENETICS: GenBank--Natural History in the 21st Century?. Science, 322(5901), 537-538.
-초창기 Genbank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유전자 염기서열의 모습 https://permalink.lanl.gov/object/tr?what=info:lanl-repo/lareport/LA-UR-83-5143
-https://fas.org/irp/ops/ci/goad.html
-https://brunch.co.kr/@sciforus/119
-월토 고드의 모습 그림출처 Strasser, B. J. (2011). The experimenter's museum: GenBank, natural history, and the moral economies of biomedicine. Isis, 102(1), 60-96.
-홍성욱. "오펜하이머의 재판." 한국논단 20.1 (1991): 176-178.
-월터 고드의 부고가 실린 잡지의 짤막한 소개글. Human Genome Program, U.S. Department of Energy, Human Genome News (v11n3-4). https://web.ornl.gov/sci/techresources/Human_Genome/publicat/hgn/v11n3/21goad.shtml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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