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고용 불안정이 갈라놓는 현실

통합검색

[박진영의 사회심리학]고용 불안정이 갈라놓는 현실

2020.09.12 10:00
미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대량해고가 발생하면서, 플로리다주의 한 실업자가 실업신청서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플로리다주는 실업 신청 웹사이트 접속에 문제가 발생해 주민들에게 인쇄된 실업신청서 양식을 배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제공
미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대량해고가 발생하면서, 플로리다주의 한 실업자가 실업신청서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플로리다주는 실업 신청 웹사이트 접속에 문제가 발생해 주민들에게 인쇄된 실업신청서 양식을 배포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제공

감정은 기본적으로 메시지다. 일반적으로 부정적 정서는 위험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신호 또는 알람이다. 반대로 긍정적 정서는 삶이 대체로 별 문제 없이 굴러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두려움은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위협이나 적이 존재해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신호이고 분노는 반대로 마냥 도망칠수만은 없거나 또는 싸워볼만한 상황일 때 그 해로운 존재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거하라고 부추기는 신호이다. 즉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나를 쫓아오고 있다거나 지진이나 불, 역병, 죽음 같은 무시무시한 적을 만났을 때는 화보다 두려움을 지배적으로 느끼고 몸을 사리게 된다. 혐오 또는 역겨움 같은 정서의 경우 토사물, 상한 음식, 바퀴벌레 등과 같은 비위생적인 자극들에 한해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정서로 감염의 위협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생존에 대한 다양한 위협들에 대해 '도망가', '싸워', 또는 '더러우니까' '가까이 가지마' 등 같은 맞춤형 알람을 울리고 따라서 반사적으로라도 적절한 행동을 취하게 만드는 것이 부정적 정서의 기능이다. 이렇게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피하는데 초점이 있는 알람들이다 보니 부정적 정서가 켜지면 우리의 주의는 해당 정서를 불러오는 문제에 꽂히게 된다. 모든 신경이 문제로 향하는 만큼 더 빠른 시간 동안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득을 보면 한편 나무에 집착한 나머지 숲을 전혀 보지 못하는, 즉 시야가 좁아지는 부작용 또한 함께 겪게 된다. 


예컨대 어떤 시험을 망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큰 경우 온 신경이 시험 하나에 쏟아져서 자신의 삶에는 이것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되고, 나아가 시험에서 낙오하는 것이 곧 인생에서 낙오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어떻게 보면 여러 번 도전할 수 있는 시험이고 그것 외에도 본인과 잘 맞는 더 멋진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한 번의 실패에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또는 시험을 망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머지 아예 시험을 보지 않으려고, 또는 시험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외적’ 이유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시험 직전에 일부러 손을 다친다든가 술을 진탕 마시거나 또는 아예 시험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 ‘셀프 핸디캐핑’, 즉 자신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된다. 두려움에 눈이 가리운 나머지 눈 앞의 문제를 피하려고 삶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구렁텅이에 처박는 비합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잘 활용하면 생존률을 높여주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면 장기적인 시야를 잃게 만드는 것이 부정적 정서다. 화의 경우 역시 분노에 눈이 멀어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가 이후에 대가를 치르게 되는 등의 근시안적인 행동을 가능케 한다. 

 

이렇게 잘못 사용하면 더 큰 문제를 불러오고 자기 무덤을 파게 만드는 부정적 정서, 좀 더 직접적으로는 편협한 시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연구가 있었다. 최근 국제학술지 '응용심리학'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본인의 직업이 위태위태하다는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차별이 없어지고 세상이 평등해지는 것에 대해 더 크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 약 천여명의 현재 직업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용 상태가 불안정하거나 언제든 잘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등 실직의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서로 다른 집단 간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거나 심지어 공정하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자기보다 소위 급이 낮은 사람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럴법한 일이지만 가지지 못한 사람들, 본인이 직접 차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그런 위협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도 차별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사회에 각종 편법을 동원한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지나치게 많고 나의 고용형태 또한 불안정하다면 예컨대 노동자 전반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는 것과 사회 전반에 안정적인 고용형태가 늘어나길 바라게 될 것 같지만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구직 시장 상황이 힘들고 본인의 고용 상황이 불안정할수록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문제, 예컨대 사회 계층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고 기회가 불평등한 점, 편법적인 고용형태, 즉 불안정한 고용을 줄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보다 우선 눈 앞에 있는 ‘다른 경쟁자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어떻게든 나의 스펙을 높여 다른 만만한 경쟁자들을 사다리에서 떨어트리는 것, 소위 차별성을 높여 얼마 없는 ‘좋은 직장’을 본인의 손에 넣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쉽게 끌어내리게 만든다는 것은 다른 경쟁자들뿐 아니라 본인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쉽게 끌어내려질 수 있음을 의마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함정을 팠다고 생각하겠지만 자기 발 밑에도 함정을 파는 셈이므로 그렇게 합리적인 생존 전략은 아닌 것이다. 


 “더 높은 스펙으로 나만의 차별성을 쌓으면 된다”는 것 또한 사다리의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모두가 더 높은 스펙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상황에서는 게으름을 피워서가 아니라 잠깐 넘어지거나 멈춰서는 정도로도 자동 탈락하게 된다. 나 역시 인간인 이상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기에 금수저나 은수저 엔진이라도 달고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역시 딱히 합리적인 생존 전략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언제 직업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일반적인 백수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별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고용 상황이 불안정한 동시에 자신도 무직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언제든지 그들과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고 확률적인 의미에서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보이는 사람들은 차별을 줄이고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수 많은 이들, 또 수 많은 능력 중 몇몇 정해진 종목에서, 그것도 삶의 한 때 좋은 성적을 얻었던 성취만으로 평생동안 특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본다. 


바구니에 게를 잔뜩 담아두면 서로 가위질을 하다가 결국 모두의 집게발이 끊어지고 만다는 말이 있다. 나만은 꼭 이 지옥을 벗어나겠다고 하지만 실은 그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가위질을 반복하며 더 큰 지옥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련자료

Selenko, E., & De Witte, H. (2020). How does job insecurity affect performance and political outcomes? Social identity plays a role. Applied Psychology.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4 + 7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