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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으로]중국은 왜 천인계획에 그토록 공을 들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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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속으로]중국은 왜 천인계획에 그토록 공을 들였나

2020.09.17 13:00
미국·호주에서도 '기술 도둑질' 부각 중국 압박
중국 해외 고급인재 유치프로그램인 ′천인계획′ 로고
중국 해외 고급인재 유치프로그램인 '천인계획' 로고

중국에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첨단기술 정보를 유출하고 대가성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14일 KAIST 교수가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이 돈의 출처가 중국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계획(千人計劃·The Thousand Talents Program)’으로 추정되면서 천인계획의 실체를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천인계획이 중국 정부의 ‘기술 도둑질’에 합법적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 노벨상 후보 美 하버드대 교수, 연방검찰에 체포

 

천인계획을 둘러싸고 문제가 불거진 건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 화학및화학생물학부장인 찰스 리버 교수는 천인계획을 통해 우한공대로부터 매달 연구비를 지원받았지만, 미 정부에 이를 알리지 않고 기술을 빼돌린 사실이 발각돼 올해 1월 28일(현지시간) 연방검찰에 체포됐다. 

 

리버 교수는 2000년대 나노 물질을 합성하고 나노디바이스를 개발하는 등 나노 기술 연구에서는 최고의 과학자로 꼽혀왔다. 그는 2012년 화학상으로는 노벨상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울프상(Wolf Prize in Chemistry)을 받았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1월 29일자에 이 사건을 다루면서 “(리버 교수는) 전 세계 최고 석학 40명 중 한 명으로 중국 정부에 의해 선정됐으며, 매달 5만 달러(약 5900만 원)의 급여와 중국 거주비 명목으로 연간 100만 위안(약 1억7400만 원)을 받고 우한공대와 공동연구 계약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리버 교수가 중국 정부와 우한공대로부터 연구실을 차려주는 대가로 150만 달러(약 17억7000만 원)를 받은 사실도 추가로 밝혀냈다. 리버 교수는 2018년 4월 미 국무부와 2019년 1월 국립보건연구원(NIH)으로부터 천인계획 참여와 관련해 질문을 받았지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8월 호주에서는 일부 과학자들이 비밀리에 중국의 천인계획에 관여해왔으며, 이를 통해 개발한 기술이나 특허가 중국 정부에 귀속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었다.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는 8월 20일 ‘피닉스를 찾아서(Hunting the Phoenix·피닉스는 봉황으로 고급 인재를 지칭)’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천인계획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천인계획을 통해 전 세계에 적어도 600곳의 연구기관과 연결돼 있으며, 이를 통해 기술 우위를 점한다는 중국의 목표를 달성한다고 결론내렸다. 

 

천인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투명성의 부재를 꼽았다. 연구비 제공을 빌미로 호주를 포함해 해외 우수 과학자들의 연구 윤리 부정을 부추기고 기술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산업 스파이’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천인계획을 통해 특정 기술을 보유한 개별 연구자들을 목표로 삼아 접근한 뒤 이들의 기술을 훔친다며, 2018년 자살한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벤처 사업가였던 장서우청 박사를 예로 들었다.  

 

장 박사는 물질의 새로운 상태인 위상절연체(topological insulator)를 처음 발견하면서 ‘디락 메달’ ‘유로물리학상’ ‘벤자민 프랭클린 메달’ 등 물리학자에게 수여되는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도 수차례 거론됐지만 2018년 12월 돌연 자살하며 충격을 안겼다. 

 

장 박사가 자살한 날은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의 부회장 겸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가 캐나다 경찰에 체포된 날로, 장 박사가 화웨이뿐 아니라 중국 정부와도 사업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만큼 그의 자살에 미 정부의 지적재산권 유출 조사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현재 호주 정부는 천인계획에 관여한 호주 대학과 연구자들을 전수조사할 방침이다. 호주 연방의회정보위원장인 앤드류 헤이스티 의원은 8월 28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불분명하고 정부에 신고되지 않은 연구 협력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면서 “중국의 천인계획이 중국 정부의 이득을 위해 연구성과와 지적재산권을 가로채도록 설계됐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8월 발간한 중국의 천인계획 분석 보고서 표지. ASPI 제공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8월 발간한 중국의 천인계획 분석 보고서 표지. ASPI 제공

○ 中, 경제 발전 모델 전환 위해 '천인계획' 도입

 

중국 정부의 고급 인재 유치 정책은 1990년대 ‘백인계획’이 시초다. 당시 중국과학원은 해외에서 귀국한 과학자에게 정착금 명목으로 1994년 기준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의 500배가 넘는 파격적인 금액을 지원했다. 


이후 2008년 천인계획을 공표하면서 해외 고급 인재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 정부는 천인계획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 2000명을 영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들에게 ‘국가 공인 전문가’라는 칭호와 함께 연구비로 최소 50만 위안(약 8500만 원)에서 최대 100만 위안(약 1억7400만 원)을 지원했다. 2015년 말 기준 천인계획을 통해 6000명의 해외 고급 인재가 중국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천인계획을 추진한 배경에는 당시 중국의 사회경제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막대한 노동력을 앞세워 제조업에서 가격우위를 선점하며 경제 발전을 이끌었지만, 이런 식의 경제 발전 모델은 한계에 직면했고 지식형 발전 구도로의 전환이 요구됐다. 

 

게다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등에서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예산을 줄이면서 대량의 고급 인력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는 중국이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중국 정부는 2012년 천인계획을 확장해 ‘만인계획(萬人計劃·Ten Thousand Talent Program)’도 발표했는데, 천인계획과 달리 중국 내 고급 인재를 선발하는 데 집중했다. 만인계획을 통해 10년 간 국가적 인재 1만 명을 키우고, 노벨상 수상이 기대되는 과학자 100인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 과학기술정책에 정통한 국내 관계자는 “예전에는 기술을 직접 훔쳐 가는 게 산업 스파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연구 협력을 빙자한 기술 유출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중 특허 비교 자료
2010년대 미국과 중국의 특허 출원 수를 비교하면 중국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반면 미국은 2014년부터 하락세를 보인다.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sation 제공

○ 기술 전쟁에서 촉발된 美-中 '신냉전'

 

중국의 ‘기술 도둑질’에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기업 CEO와 백악관 관계자들이 자리한 만찬에서 “(중국에서) 미국에 유학 온 거의 모든 학생은 스파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이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중국 출신의 과학자 77명을 논문 심사와 예산 편성 권한에서 공식 제외했고, NIH의 지원을 받는 모든 연구자에게 해외 정부나 다른 기관의 연구비 지원 금지 등을 명시한 연구 윤리 규정을 배포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올해 코로나19 유행으로 격화됐다. 7월 중국인 2명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하는 미국 기업 네 곳을 해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국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지난 15일 미국 기술을 조금이라도 활용한 반도체 기업은 중국의 화웨이에 반도체를 팔기 위해서는 미 상무부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는 고강도 제재를 단행했다. 

 

외신들은 기술 전쟁에서 비롯된 최근의 미중 관계를 ‘신냉전’ 또는 ‘하이브리드 냉전(hybrid cold war)’이라고 부르고 있다. 데이비드 츠웨이그 홍콩과기대 교수는 8월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 연구자가 공동저자로 들어가지 않은 미국 논문 수는 줄어든 반면 중국 논문 수는 늘이 미국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천인계획을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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