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인간 행동의 진화] '멍 때리기', 진짜 정보를 취하는 과정

통합검색

[인간 행동의 진화] '멍 때리기', 진짜 정보를 취하는 과정

2020.10.04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멍때리기 

 

2014년 10월 27일 서울시청에서 아주 이상한 대회가 열렸다. 멍때리기 대회(the Space-out Competition).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대회다. 규칙은 간단하다. 잠자거나 떠들거나 노래부르거나 먹거나… 이런 ‘목적 지향적 행동(goal-directed behaviors)’을 하지 않는 것이 전부다. 심사 위원은 참가자의 심박수를 재고 안정적인 심박 그래프를 보인 참가자를 대회 수상자로 꼽았다. 


참가자는 그냥 ‘멍때리고’ 있다. 스님처럼 가부좌를 트는 것도 아니다. 양반다리를 해도, 색시처럼 모로 앉아도, 아이처럼 양 다리를 펼치고 있어도, 심지어 의자를 사용해도 괜찮다. 실은 꼭 앉아있을 필요도 없다. 눕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물론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것이다. 관객투표로 예술점수(!)를 매겼는데 누워있으면 수면 중으로 오인받을 위험이 있다. 가능한 ‘예술적인 멍때리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주변에 대한 무관심성을 주변에 과시해야 한다. 비목적적 행동을 통해서 우승이라는 목적을 이뤄야 한다. 이러한 모순적 과제를 수행하면서 안정된 심박수라는 생물학적 지표도 유지해야 한다. 자기 모순적 경기다. 자와 타, 념과 무념, 이와 기를 모두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쯤 되면 티벳 고승의 경지다. 설립자는 대회를 두고 ‘행위예술’이라고 했다. 


멍때리기 동물

 

인간을 비롯해 모든 동물은 멍때리기의 고수다. 생존과 번식이 필요하지 않은 자극은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인간의 귀는 초음파를 듣지 못하고 인간의 눈은 자외선과 적외선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피부는 미세한 진동을 느끼지 못하고 혀는 일곱 가지 맛을 제외하면 미맹에 가깝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후각이다. 방금 맡은 향기지만 곧 덤덤해진다. 코는 냄새를 맡다가도 금세 자체 멍때리기에 들어가기 십상이다. 


말초적 필터링(peripheral filtering)은 감각기관에서 일어나는 자극 선택 현상을 말한다. 생태적 환경이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를 다 받아들이다가는 금세 피곤해질 것이다. 꼭 필요한 자극만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외의 정보에는 다 무관심해야 한다.


사실 감각기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민감성이 아니라 선별성이다. 같은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같은 자극을 미세하게 구분해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어떨 때는 달려들고 어떨 때는 피해야 한다. 그래서 적절한 멍때리기는 말초 감각 기관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앙 멍때리기 통제 시스템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한강공원에서 열린 ′2017 한강 멍 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회에 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서울 마포구 망원한강공원에서 열린 '2017 한강 멍 때리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회에 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고등동물로 갈수록 모든 것이 점점 복잡해진다. 바리케이드를 지키는 보초병이 누구를 들여보낼지 말지 전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실수가 잦을 것이다. 일단 신분증을 확인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대신 2차, 3차 관문에서 다시 세밀하게 평가해 엉뚱한 녀석은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중추적 필터링(central filtering)이라고 한다.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굴뚝나비의 교미 비행을 관찰해보았다. 수컷이 암컷을 따라다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과연 암컷의 어떤 자극이 수컷을 흥분시키는 것일까. 이것저것 모형을 만들어 실험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움직임과 명암이었다. 틴베르헌이 까만 종이를 달아 펄럭거리면서 움직이자 수컷은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구애했다. 어리석은 나비라고 깔보지 말자. 당신도 어제 종이에 인쇄된 남녀 배우의 사진을 보고 혹하지 않았는가.


아니 이게 멍때리기와 무슨 상관이냐고. 중요한 것은 굴뚝나비가 색맹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비가 색맹이면 꽃을 찾는 데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구애를 할 때는 색깔을 신경쓰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정보만 적절하게 필터링하는 것이다. 

 

명상 혹은 멍때리기

 

멍때리기 대회는 평소 ‘멍때리기’에 자신이 있는 수많은 이에게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멍때리는 행동은 그리 쉽지 않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는 것은 나도 자신이 있지만, 사실 마음 속에서는 별별 생각이 다 오간다. 어제 있었던 창피했던 사건, 오늘 처리해야 할 과업에 대한 걱정, 공연히 얄미운 녀석에 관한 미움, 그러다가 슬며시 떠오르는 내 사랑의 얼굴… 이런 것은 멍때리기가 아니다. 심박수가 요동칠 것이다. 


진짜 멍때리기는 명상과 비슷하다. 관상기도나 선, 위파사나 명상, 마음챙김 등 이름도 다양하지만 핵심은 비슷하다. 몸과 마음을 잠재우는 것이다(진짜 쿨쿨 자는 것은 아니다). 지난 칼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자발적 행동에 특화된 동물이다. 사실 우리 행동의 상당 부분은 특정한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생겨난 자발적 행동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서 그러한 행동의 진화적 원인을 찾기도 하고 유년기의 갈등을 찾기도 하지만… 아무튼 당장의 자극은 부수적인 유발요인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실 움직임 자체는 멍때리기에서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춤을 춰도 되고, 가볍게 걸을 수도 있다. 명상에 대해 ‘이게  진정한 명상이다, 저게 정통 명상이다’라며 다양한 주장이 난무한다. 관련 책을 보거나 교육을 받다보면 안그래도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 흐트러진다. 일찌감치 ‘필터링’시키자. 멍때리기라면 누구나 해보지 않았는가.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 여기서’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걸러내는 과정이다. 그러면 ‘지금 여기’ 집중해야 할 정보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평소에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어느정도 ‘타고난 명상가’다. 멍때리는 시간을 통해 우수한 중추적 필터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보를 얻으려고 부산히 왔다갔다 하며 안절부절해도 소용없다. 결국은 이런저런 정보를 다 버리고 진짜만 취해야 한다. 


티벳의 수도자는 득도를 위해 멍때리기를 하겠지만 우리는 아니다. 철수와 헤어질 것인지, 박봉의 강사를 계속할지, 원고를 쓸지 미룰지, 영끌로 집을 살지 말지 등 세속적인 고민이다. 하지만 멍때리기 능력은 원래부터 세속적 목적, 생존과 번식을 위해 빚어진 진화적 능력이다. 머릿속에는 주변 생태환경에서 유입된 다양한 정보가 바다의 해파리떼처럼 떠다닌다. 멍때리기는 이러한 ‘번뇌’에서 벗어나는 수동적 회피가 아니라 취할 해파리와 버릴 해파리를 구분하는 적극적인 내적 과정이다. 


삶을 좌우하는 어려운 결정일수록 이러한 내적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 멍때리기의 시간도 길어진다. 정보는 사실상 무한히 얻을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유입 정보를 차단하고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를 심산유곡 선사에서 하면 명상이라 부르고, 자기집 방구석에서 하면 멍때리기라고 한다. 


※참고문헌

-Tinbergen, N. (1948). Social releasers and the experimental method required for their study. The Wilson Bulletin, 6-51.
-박시룡. (1996). 동물행동학의 이해. 대우학술총서》, 서울: 민음사, 
-신현진. (2020). 예술소통의 사회적 의미와 작품에서의 형식: 웁쓰양의《 멍때리기 대회》 사례연구. 미술사학보, 54, 153-177.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6 + 5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