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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수학과 문학에 빠진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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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수학과 문학에 빠진 수학자"

2020.10.27 16:54
최재경 고등과학원(KIAS) 원장
최재경 고등과학원(KIAS) 원장이 수학 전공 서적이 가득한 연구실 서재 앞에서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고 있다.
최재경 고등과학원(KIAS) 원장이 수학 전공 서적이 가득한 연구실 서재 앞에서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고 있다.

[편집자주]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버리는 것과 같다”는 속담처럼 과학에서는 과학자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 학문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과학자 한명 한명이 학문의 다양성을 대표하고 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곧 다양성의 상실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과학자들의 은밀한 사적 공간이자 창의성을 발휘하는 공간인 서재를 360도 촬영이 가능한 가상현실(VR)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봤습니다. 서양의 저택에 있는 거대한 서재를 기대하셨을 분도 있지만 과학자들의 일상 공간인 연구실 한 켠에, 또 집 거실 한 켠에 마련된 소박한 공간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단조롭고 소박한 서가에 꽂혀있는 책에서 연구를 계속할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삶의 활력을 찾는다고 합니다. 다섯 명의 과학자들의 일상과 책 이야기를 VR사진과 동영상으로 소개합니다.

 

최재경 고등과학원(KIAS) 원장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년까지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하고 올해 고등과학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고등과학원은 한국의 기초 과학을 선도하기 위해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를 본따 1996년 설립된 기초 과학 연구기관이다. 강의나 인재 육성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 수학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ㅌ1994년 필즈상을 받은 에핌 젤마노프 교수가 수학부에서 연구하고 있다.

 

최 원장은 미분기하학을 연구하는 최 원장은 극소 곡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고차원에서 여러 곡면을 발견하고 연구해 1987년 과학기술처와 한국과학재단이 1987년 제정한 한국과학상을 1995년에 받았다. 극소 곡면은 쉽게 말해 비누막에 관한 연구다. 철사로 만든 도형을 비눗물에 담근 뒤 꺼내면 비누의 화학적 성질 때문에 면적을 최소로 하는 모양을 만드는데, 이 원리를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분야다.

 

고등과학원 원장실에 들어서자 최 원장은 ‘서재는 다른 곳에 있다’며 위층 연구실로 안내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빼곡한 수학 전공 서적이 보였다. 반대편 작은 책장에는 다양한 외국 문학 작품이 있었고, 여기저기 도형과 시를 융합해 만든 작품들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최 원장에게 서재가 있는 연구실이 어떤 의미냐고 묻자 대학교 시절 자주 갔던 독특한 분위기의 다방과 비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계속 수학을 연구하고 있고, 원장 퇴임 후에도 계속 연구하며 논문을 쓰고 싶다"며 "내 서재를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Q. 서재에 어떤 책들이 있나


나에게 책은 커피나 와인 같다. 수많은 종류의 커피와 와인 중 에스프레소와 레드와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수많은 책을 다 읽진 않지만, 좋아하는 분야라면 많이 본다.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프란츠 카프카와 제임스 조이스가 쓴 소설, 셰익스피어의 시집 소네트 같은 문학 작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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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인 홈페이지에 직접 지은 소설이 있던데

 

사실 고등학교 때 꿈이 소설가였고, 고2 때까지 문과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아인슈타인 전기나 황순원 단편 소설집을 즐겨 읽으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작가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각으로 쓴 서평을 보고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3 때 이과로 바꿔 수학을 전공하게 됐다.


수학과에 진학해서도 책을 꾸준히 읽었고, 수학과 함께 문학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학을 소재로 한 단편 소설과 중편 소설을 1편씩 지어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책상에 올려놓은 얇은 책도 내가 지은 ‘디도의 딸’이란 소설로, 실제로 연구했던 '디도의 여왕 문제'를 소재로 지었다.  종종 시도 쓰는데 과거 한 수학 문제를 오랫동안 풀지 못해 좌절했던 순간에 시를 한 편 쓰고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Q. 책에 얽힌 추억이 있다면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소설 '애러비(araby)'를 너무 재밌게 읽어서 오디오북을 사서 수없이 듣고 암송했다. 처음 암송했던 때가 25년 전 같은데 그때부터 매주 암송하면서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도 15분에 걸쳐 암송할 수 있다. 요즘 5살 된 손녀에게 화상으로 만나 책을 읽어주는데 언젠가 애러비를 암송해 주고 싶다. 

 

Q.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은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쓴 소설과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리너스를 추천하고 싶다. 더블리너스가 스토리로 감동을 준다면 프란츠 카프카는 파격적이라서 추천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쓴 단편소설 '변신'을 예로 들면 평범한 가정에 살던 주인공이 어느 날 잠에서 깨자 벌레가 돼 있다.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도망 다니고 피해 다니는 주인공을 통해 '소외'라는 주제를 표현한다. 이렇게 소설에서 다루기엔 다소 독특한 소재를 거리낌 없이 쓰는 걸 보면 ‘저렇게 써도 되는구나’라는 용기를 받는다.  

 

더블리너스는 작가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한 소년이 친구의 여자 형제를 좋아했으나 선물을 사지 못한 이야기, 하숙집 주인이 딸을 멀리 시집을 보내는 이야기처럼 간결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렸다.

 

Q. 평소 서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인가


보통 수학자의 연구실처럼 대부분이 수학 전공 책이어서 서재라는 공간에 큰 감흥은 없없다. 하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분위기는 있다. 대학교 때 ‘숲속의 빈터’라는 다방을 자주 갔었는데, 조용한 숲속에 있는 나만의 아지트에 가는 듯한 분위기가 좋았다. 서재도 그런 곳이고 이 공간도 그런 느낌을 준다.

 

Q. 서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새로운 소설을 쓸 계획이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구상만 해둔 상태다. 주말에 해외 매체인 뉴욕타임스나 더뉴요커에 나오는 책 비평이나 작가들의 인터뷰를 읽고 있다. 책을 읽는 것과 다르게 새로운 관점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소설 거리가 될 만한 것들도 찾고 있는데 수학자이다보니 수학 관련 소재가 많다. 구상 중인 소설도 수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이 연구실에 마련한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고 있다. VR카메라로 최 원장의 서재를 촬영한 모습.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이 연구실에 마련한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고 있다. VR 카메라로 최 원장의 서재를 촬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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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실감형기획취재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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