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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책은 복잡계를 가르쳐 주는 진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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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서재] "책은 복잡계를 가르쳐 주는 진짜 선생"

2020.10.30 00:00
김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연구원
김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이 책이 가득한 연구실 서재에 기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김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의 서재는 여러 분야의 책이 여기저기 무작위로 놓여있어 김 연구원이 연구하는 복잡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계산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의 연구실이자 서재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법한 조그마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낡은 모습에서 오랫동안 영감을 준 물건임을 짐작게 했지만, 김 연구원은 “밤에 도둑이 들어올까 봐 트는 라디오”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 연구원은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복잡계는 특정한 집단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찾는 학문이다. 경제학 연구부터 인공지능(AI)까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여러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염병 전파도 대표적인 복잡계다.

 

10년간 감염병 전파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온 김 연구원은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전파양상을 밝히는 데도 활약해 왔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던 올해 3월과 4월에는 국경 차단, 휴교령에 따라 감염병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를 분석해 제시하기도 했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인 만큼 연구실 세 면을 둘러싼 서가도 김 연구원이 만든 '복잡계'로 구성됐다. 서가에는 복잡계와 양자역학에 관한 책부터 역사, 정치, 시집과 대하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별다른 정리 없이 책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듯한 서가를 오가며 김 연구원은 거침없이 원하는 책들을 꺼내 들었다. 김 연구원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올더스 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가리키며 “전공을 고를 때 가장 영향을 받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두 책은 미래 세계를 앞서 선보이면서도 현대 사회에 통찰을 제시하는 명작 과학소설로 꼽힌다. 김 연구원은 “파운데이션은 확률로 변하는 미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는데 그런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했다”며 “지금 하는 연구 중 경제학 분야에서는 금융 같은 경제 현상을 수리적으로 해석하는데, 이 또한 사실은 확률로 그려지는 미래 세상을 예측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멋진 신세계에 대해 김 연구원은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사회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너무 공개돼 헷갈리고, 책이 너무 많아 오히려 책을 보지 않는 사회가 두렵다는 이야기”라며 “제가 다루는 무한이라는 것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어떠한 사회 현상이 극단에 다다를 때 일어나는 현상을 예측하는 김 연구원의 연구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다양한 연구 주제 중 복잡계를 선택한 이유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요시나가 요시마사가 쓴 ‘복잡계란 무엇인가’를 읽은 것을 꼽는다. 읽게 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책의 내용은 하나하나 기억 속에 남았다. 김 연구원은 “서문의 서평란을 읽고 막연히 광화문 서점에서 책을 산 것 같다”며 “보통 생각하는 세계는 두 가지 사안이 부딪히는 결과가 많은데 여러 가지가 부딪히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가 즐거움을 찾는 책들도 복잡계의 정수라 할 만한 '인간의 역사'다. 김 연구원의 서재 한켠에는 조정래의 ‘한강’,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이 가득하다. 김 연구원은 “하나의 삶들이 모여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와 송지나의 ‘모래시계’ 대본집도 그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최근에는 역사와 자연과학의 관계를 다룬 존 루이스 개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읽으며 역사를 연구의 한 분야로 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김 연구원은 “과학사나 경제학 역사에서 사회적 변화가 학문에 유입되며 학문이 변화는 과정을 봐야 그 분야를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시는 한 마디가 여러 연결고리를 담고 있는 고도의 복잡계다. 김 연구원은 가장 좋아하는 시집 중 하나로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을 꼽는다. 아래는 이 시집에 수록된 '장편'이라는 시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 연구원은 “정말 생각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고 말했다.

 

시는 김 연구원을 위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미국 유학 시절 ‘괜찮다’라는 말을 너무나도 듣고 싶을 때 이를 들려준 책이 마종기의 시집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다. 김 연구원은 “시인 본인이 의사였고 잘 살려고 도미했던 사람”이라며 “너무 외로워 밤마다 병원 지하실에 앉아 시를 썼다는데 그 마음이 전달돼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의 서가에는 책뿐 아니라 영감을 얻을 소재들이 무궁무진했다. 책상 위에는 인상파 화가 모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서재 곳곳에 놓인 미술 작품집과 음악 연주자들의 앨범은 단순히 좋아서 놓은 것일 뿐 아니라 과학에 대한 영감을 제공한다고 한다.

 

김 연구원은 “인상파가 탄생한 배경은 기차가 발전하며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게 되면서라고 한다”며 “예술의 생각과 과학의 생각이 항상 붙어있지 않냐는 게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실감형기획취재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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