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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과거와 미래] ⑦우리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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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과거와 미래] ⑦우리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2020.11.10 12:00

 

MIT Science(@ScienceMIT) 제공
코로나로 인해 한적한 MIT 캠퍼스의 모습.  MIT Science(@ScienceMIT) 제공

중세 대학이 근대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 속에서 그 역할이 종료되었듯이,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인류사적 전환기에 근대 대학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이 담당해 온 연구와 교육의 두 가지 핵심 기능 중 교육에 더욱 큰 변화가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의 특징은 ‘다양성’, ‘연결’, ‘리질리언스(회복력)’로 요약된다. 미래의 인재상은 넓은 기본 지식과 다양한 관점을 갖고 있고, 타인과 원활하게 연결하고 협업할 수 있으며,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과 새로운 문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재다. 

 

전세계 대학 가운데 미래 인재의 소양을 가장 잘 육성하고 있는 곳은 학생 1인당 교육 비용이 가장 높은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이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프린스턴대는 인문 교양 대학 (Liberal Art College)과 유사하게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동시에 한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학사 구조를 갖고 있다. 

 

모집 단위가 없거나 느슨하며, 입학생은 다양한 수업을 듣고 관심 분야를 선택해 일정 학점 이상을 수강하면 해당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구조이다. 하버드대는 글쓰기, 데이터 분석, 외국어, 예술과 문화, 도덕과 윤리, 역사와 사회, 과학과 기술 분야를 핵심 이수 분야로 정의한다. 핵심 이수 분야의 과목들을 수강하고, 50개의 집중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하여 10여 개의 강좌를 수강하면, 학사 학위의 기본 조건을 만족하게 된다. 예일대는 인문학 분야를 좀 더 강조하며, 분배 이수제도를 통해 인문학, 과학, 사회과학, 외국어, 수리 추론, 글쓰기 분야에서 다양한 과목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해서 수강할 수 있다. 예일대는 2,000개의 학부 강좌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규모 강좌가 많아 다양성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MIT 수학과 대학원들이 주최하는 ′적분대회′ 모습. MIT 2006 Integration Bee/Keith Winstein 유투브 캡쳐
MIT 수학과 대학원들이 주최하는 '적분대회' 모습. MIT 2006 Integration Bee/Keith Winstein 유투브 캡쳐

MIT는 과학 중심의 학사 구조를 통해 다양성을 제공하는 역설을 보여 준다.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수강하는 기초 수학 2과목, 기초 물리 2과목, 기초 화학 1과목, 기초 생물 1과목을 과학 필수과목으로 선정해 모든 MIT 학생들이 수강해야 한다. MIT가 제공하는 전공 분야인 철학, 인류학, 정치학, 여성학, 음악 등 인문, 사회, 예술 분야의 학생들도 예외 없이 6개의 과학 필수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자연과학 중심의 차별화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적분학을 학습한 음악가, 화학식을 이해하는 철학자, 물리학을 학습한 인류학과 졸업생을 배출하는 대학인 것이다.

 

연결과 리질리언스의 육성에는 정규 교과 과정보다 대학이라는 연결의 플랫폼이 제공하는 교과 외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 명문 사립대학들은 충분한 재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과 외 활동을 지원한다. 예일대는 14개의 기숙 대학을 학부 교육의 중심축으로 운영한다. 주거 공간, 학습 공간, 강의 공간, 학과 외 활동 공간 등으로 구성된 이 공간에서 1학년에서 4학년까지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학습하며,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용 공간을 통해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동선이 설계되어 있다. 이런 기숙 대학의 환경에서 협업, 소통, 적응력, 주도성 등 연결과 리질리언스 소양을 키우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법학, 의학, 경영대학원이 없고 순수 학문과 학부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프린스턴대의 학생들도 6개의 기숙대학에서 생활하고 학습한다. 우드로 윌슨이 총장이었던 1905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운영되는 교수와 학생 간의 토론 프로그램인 퍼셉토리얼을 통해 세계적인 교수들과 학생들이 친밀한 관계로 맺어지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봉사 활동에의 대한 제안, 봉사 그룹의 운영, 기본 봉사 그룹에 참여와 헌신을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학과 외 과정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해외 명문 대학들에는 유독 다양한 클럽이 있다. 학생들은 클럽 활동을 통해 교과과정에서 제공할 수 없는 학습 활동과 공동 작업을 경험하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3, 4학년들이 참여하는 공동 식사와 사교 클럽인 이팅(Eating) 클럽이 유명하다. 공동 학습, 튜터링, 교수 초대 토론회, 지역 봉사, 스포츠 시합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스포츠 클럽이 다양하고 활발하며, 충분한 스포츠 시설과 장비를 제공하여 스포츠가 대학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버드대는 한때 1마일을 수영할 수 있어야 졸업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을 만큼 스포츠를 강조했다. 명문 대학들은 대학 간 스포츠 교류에 엘리트 선수들이 아닌 아마추어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연결과 리질리언스를 머리가 아닌 몸과 가슴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국가 주도 근대 대학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제한된 재정 상황을 갖고 있는 미국의 주립대학들도 유사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은 온라인 교과과정을 통한 학습 효과 제고로 유명하며, 조지아 주립대는 자퇴가 가장 많은 1학년 학생들에게 튜터링 같은 학습지원을 통해 자퇴율을 낮추고 있다. 메릴랜드 볼티모어 주립대는 자유교양 대학의 교과 프로그램을 도입해 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 주립대학들은 미국의 대학 평가에서도 전통의 사립대학들과 학부 교육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3,4학년이 참여하는 이팅클럽이 유명하다. 각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고유한 음식을 맛보는 동시에, 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프린스턴대 제공
프린스턴대는 3,4학년이 참여하는 이팅클럽이 유명하다. 각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고유한 음식을 맛보는 동시에, 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프린스턴대 제공

국가의 주도하에 표준화되고 전문화된 근대 대학의 모습을 극단까지 끌고 나간 한국 대학들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해외 사립 명문대가 지향하는 인재상이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고 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이 사실상 충분한 재정 지원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개별 대학이 지향하는 교육 목표, 교육 내용, 교육 방법이 다양하다는 점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지원해 줄 수 있는 학습 활동과 교과 외 활동이 다양하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국내 대학들이 처한 재정적 상황, 지역적 위치, 주변 산업 환경, 교수와 학생들의 특징을 고려해 교육 프로그램을 특화하고 교과 외 활동을 혁신할 때, 이런 사례들을 참조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학들의 건강한 생태계는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의 다양성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또 미래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토대가 돼야 한다. 대다수 국내 대학들이 획일화된 교육 내용과 표준화된 교육 방식에 따라 대학에 상관없이 모두 비슷비슷한 졸업생을 배출해 왔던 점은 혁신되어야 한다. 대학이 다양하게 분화될 미래의 대학들은 개별 대학의 상황에 가장 알맞은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 그리고 교과 외 활동을 채택하고 지원할 때 가능할 것이다. 

 

한국 대학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언급한 바와 같이 문과와 이과의 분리와 학과 중심의 학사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의 문과 이과 결정은 수학에 대한 흥미 여부에 따라 단순하게 결정된다. 과거의 과학 기술자는 기본적으로 계산이 능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빠르고 정확한 계산 능력이 우수한 과학 기술자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컴퓨터가 계산을 담당하는 현대에는 정확하고 빠른 계산 능력보다, 논리적 비판적 사고 능력과 컴퓨터 활용 능력을 기반으로 주어진 문제를 명확히 이해하고, 대안들을 찾아서 비교 검토하고,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문제 해결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인문, 사회, 경영, 경제, 행정 분야의 문제 해결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문과 분야 학생들은 수리 능력 향상을 통해 좀 더 논리적이고 정교한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또 이과 분야 학생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대한 학습을 통해 더욱 다양한 대안 창출과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 폐지가 어렵다면, 문과에 속한 학생들은 이과 관련 과목을, 이과에 속한 학생들은 문과 관련 과목을 더 많이 수강할 수 있도록 학사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부전공, 이중 전공과 같이 추가 학점 이수가 필요한 프로그램이 아닌 학사 졸업 기본 조건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는 입시 제도의 변화 없이 개별 대학이 의지만 있다면 시행할 수 있는 사항이다.

 

필수 교양과 기초 과목의 수강 이후 전공 기초 과목과 전공 심화 과목을 수강하는 구조를 개편하는 방법도 있다. 해외 명문 대학들의 교양 강좌는 학생들이 어렵고 진지하게 수강한다. 개별 교양 강좌의 학습량이 과중할 뿐만 아니라, 전공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적성을 탐색하기 위해서, 또한 전공 선택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학습해서 미래 인재의 소양인 ‘다양성’을 내재화하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전공이 정해져 있는 국내 대학에서 기초 교양 강좌와 기초 핵심 강좌들로 1학년 학생들의 시간표를 채우는 것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다. 학습 효과 측면에서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정해진 전공과목을 1,2학년에 배치하고, 3,4학년에는 전공 학습을 통해 필요성을 느끼게 된 다른 전공 분야, 기초 학문 분야, 융합 학문 분야, 핵심 역량 강좌를 수강하게 하는 ‘거꾸로’ 수강 구조도 고려해 볼 만 하다. 

 

동아사이언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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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학년 시간에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라면, 다른 학문 분야를 진지하게 수강해 ‘다양성’을 충실하게 보강하고, 대학원 진학 및 전문직을 고려하는 학생이라면 부족한 기초 학문 역량을 보강해야 한다. 3,4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융합 학문을 경험해 보고, 팀 프로젝트를 수행해 볼 수 있도록 수강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 ‘데이터 분석’처럼 졸업 이후 그 가치가 높은 핵심 역량 강좌를 3,4학년에 수강할 수 있도록 수강 구조를 변경한다면 최고의 교육 효과를 이끌어 낼 것이다. 

 

미래 인재의 소양인 의사소통, 협업 능력, 적응력, 주도성 등을 키우기 위해선 성적 평가 체계에 대한 혁신과 학과 외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중고교 기간 동안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학습하며, 과중한 입시 부담으로 협력 활동과 공동 작업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대학에 진학한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지극히 개인 중심적인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정규 교과 과정의 성적 평가에 공동 작업으로 수행하는 활동이 포함해야 하고 협력 활동이 필요한 지역 사회 경험학습, 교수자가 제시한 주제를 협력을 통해 학습해 나가는 동료 학습과 같은 학습법을 채택하는 강좌들이 많아져야 한다. 

 

학생들의 자생적인 클럽(동아리)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은 별다른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다. 미국의 학부 교육 평가 내용을 살펴보면, 클럽 활동에 대한 지원 수준과 개별 대학에 있는 클럽의 개수를 중요한 평가 지표로 고려한다. 기숙대학(RC)도 기존의 대학 기숙사 인프라를 사용하면 부분적인 RC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평가받는 싱가포르 국립대는 RC에 적합한 학생들에게 선별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기숙대학의 운영도 재정 상황과 대학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대학에서 다양성 존중과 인권 감수성 관련 교과목은 핵심 기초 과목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국공립 대학들은 공동으로 교과목을 개발해볼 수도 있고, 사립대학이라면 건학 이념의 틀 안에서 다양성과 인권 감수성에 대한 자체 교과목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정규 과목을 통해 국내 지역간의 분열, 세대간의 분열, 여성과 남성의 분열, 진보와 보수의 분열, 종교간의 분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개인이 속하는 진영에 대해 고민해 보고 동시에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진영의 입장을 학습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교육이 실현되려면 먼저 다양성과 인권 감수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영과 정파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 교육 방법에 대한 타협이 선행돼야 한다. 독일은 1976년 좌파와 우파의 정치교육학자들이 모여 정치교육 방법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담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도출했다. 다양한 입장이 있는 사회 현안에 대해 교사의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논쟁적 사안에 대해서는 수업 안에서도 논쟁을 재현해야 하고 학생 개인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정치적 안목을 키워 주는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어 한다는 것이 그 세 가지 원칙이다. 

 

다양성 존중과 ‘다름’을 인정하는 인권 감수성 증진이 고등교육법의 교육 목표로 명시되고, 교육 방법을 기초로 모든 학생들이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식견을 갖게 될 때, 미래 인재의 역량인 다양성, 연결, 리질리언스의 향상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이 연재는 지난 6월 5일 출판된 필자의 저서《대학의 과거와 미래》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허준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대학에서 공간 정보 취득, 관리, 분석, 시각화, 활용과 관련한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미국 공간정보 벤처 기업에서 5년간 기술총괄이사로 일했다. 연세대 오픈스마트에듀케이션(OSE) 센터장, 교육부 한국형 온라인공개강좌(K-MOOC) 기획위원, 미래교육 실무 자문단, 국가 평생교육진흥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코세라에서 ‘공간 데이터 과학과 응용(Spatial Data Science and Applications)’라는 MOOC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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