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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언어,대중의 언어]④더 나은 과학용어를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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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언어,대중의 언어]④더 나은 과학용어를 만들어야

2020.12.20 06:00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동아사이언스와 국어문화원연합회는 대중이 사용하는 말글과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의 간극을 줄이고 한글과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외국말을 활용해 대중이 좀더 이해하기 쉽고 전문가도 거부감 없이 활용하는 전문용어 문화 정착을 위한 캠페인의 하나로 '쉬운 의과학용어 찾아쓰기' 기획을 3차례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지난 8월19일과 21일, 같은 달 30일 보도한 '과학용어는 먼나라 말' 시리즈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롭게 쏟아지는 의과학 용어의 홍수 속에서 정작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할 대중은 소외되고 있다는 점을 설문 조사 등을 통해 보도했습니다. 지난 10월 12일과 13일, 같은 달 16일 보도한 두 번째 시리즈인 '고쳐 쓰자 과학용어'에서는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과 정부출연연구기관 홍보협회 등과 공동으로 과학계와 과학 커뮤니케이션계 내부에서 용어 순화의 필요성을 설문조사를 통해 끌어냈습니다.  이달 8일과 10일, 12일 보도된 세 번째 시리즈인 '전문용어의 벽 어떻게 허무나'에선 해외 각국에서 일고 있는 용어 장벽을 깨는 과학계의 노력을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과 과학계 숙제로 남아있는 용어 순화의 문제를 이번 기획의 자문을 맡고 있는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교수)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최무영 서울대 교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기고를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과학용어가 몹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과학자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어로 된 과학용어는 표기법이 어색하고, 억지로 꿰어 맞춘 우리말 과학용어는 낯설고 불편하다. 우리 과학용어에는 원칙도 없고, 일관성도 없다는 불만도 있다. 그래서 아예 우리말을 포기하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원어’(대부분 영어)를 쓰자는 과학자도 많다. 그런 문제는 과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의 전문용어도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의 언어생활이 통째로 혼란에 빠져있다. 그래도 과학용어에서 치유의 노력을 시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과학용어에 대한 대수술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쉬운 과학용어에 대한 환상

 

흔히 과학자의 설명이 어려운 것이 낯선 과학용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학자의 설명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과학용어 때문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과학자가 설명하는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경우에는 도리가 없다. 아무리 쉬운 용어를 동원해도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 첫 주마다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특히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의 업적이었던 ‘신의 입자’로 알려진 ‘힉스 보손’을 기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물리학자들의 입장은 몹시 난처했다. 표준모형, 스칼라 보손, 자발적 대칭성 깨짐, 힉스 메커니즘과 같은 과학용어 중 어느 것도 빼놓을 수가 없었고, 그 중 어느 것도 쉽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인을 위한 은유적 설명도 불가능했다. 표준모형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과학용어가 낯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반인이 경험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엑시톤·스핀·캐리어·프라이머의 정확한 의미를 쉽게 알려주는 표현과 표기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과학용어가 낯설고 어렵다는 불평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현대과학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과학상식을 이해하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달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뿐이다. 철학도 어렵고, 문학도 난해하다.

 

우리말 용어가 필요하다
 

대학의 언어생활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피폐해졌다. 엉터리로 발음하는 외국어에 우리말 토씨를 붙인 해괴망측한 언어가 판을 치고 있다. 심지어 일상적인 형용사와 부사도 엉터리 영어로 써야 대접을 받는다. 이공계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모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엘레강스’하고 ‘시크’한 ‘스타일’의 ‘신상’을 ‘론칭’한다고 해야 대접을 받는다. 바이오·패션·IT·언론이 모두 그렇다. 심지어 우리말 용어가 도무지 필요하지 않다는 과학자와 전문가도 있다. 어차피 세계화 시대에 전문가라면 전문용어는 ‘원어’로 쓰게 된다는 것이 핑계다.


언어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오늘날의 전문용어의 상당수가 미래의 일상어가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엉터리 ‘원어’가 망쳐놓을 다음 세대의 암울한 언어 현실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은 많이 낯설고 불편할 수 있겠지만 미래를 위해서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우리말 용어를 만들고, 활용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스루기’나 ‘결맞음’처럼 이미 사라져버린 고어나 억지 춘향으로 꿰어 맞춘 우리말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초(超)끈 이론’(super string theory)보다 ‘초현(超絃) 이론’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네덜란드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니시 아마네나 우다가와 요안과 같은 난학자들의 노력을 주목해야 한다. 과학·철학·경제·문화‧낭만을 비롯해서, 산소·수소·질소·탄소·백금·산화·환원·포화·용액·분석이 모두 그렇게 등장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낯선 한자 용어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 언어생활이 가능해졌다는 주장도 있는 형편이다.


표음문자인 한글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버려야 한다. 한글로 다양한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로 모든 언어의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 한글로는 장단과 높낮이를 표기할 수 없다. 한글로 적은 ‘외국어’와 우리말에 녹아들어간 ‘외래어’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일단 외래어로 굳어진 과학용어의 ‘원어’ 발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언어는 합의의 산물이다

 

새로운 과학용어를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용어에 담겨있는 개념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용어도 우리말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절대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말과 어울리지 않는 과학용어는 아무리 정확한 것이라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유전체’와 같은 성공 사례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게놈’이나 ‘지놈’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말에 어울린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하면 과학용어의 의미기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계점·특이점·삼투를 엉뚱한 의미로 쓰는 경우도 많고, 음이온·알칼리·항산화처럼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익숙한 일상용어의 사용도 쉽지 않다. ‘복잡계’(complex system)가 단순히 ‘복잡한 계’로 인식되어 버리고, ‘혼돈’(chaos)이 그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으로 평가절하 될 수 있다.


과학용어에 작용하는 극단적인 분야 이기주의도 부끄러운 것이다. ‘mechanism’은 분야에 따라 메커니즘·메카니즘·기전·기작·기구 등으로 적는다. 서로 ‘전문성’을 앞세워서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어렵게 찾아낸 ‘비말’을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비말은 대화 중 입에서 튀어나간 ‘침방울’에서 ‘에어러졸’보다 크기가 큰 탓에 2미터 이상 날아가지 않는 입자를 뜻한다. 


언어는 ‘원칙’이나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라는 분명한 인식과 함께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노력을 존중해주는 성숙함이 꼭 필요하다. 과학용어의 순화에도 표준어를 관리하는 국립국어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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