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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능력에 의한 평가는 과연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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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능력에 의한 평가는 과연 공정한가

2021.01.14 16:38
 

“사회가 정의롭다고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예를 들면 소득과 부, 의무 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러한 재화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분배하며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준다. 하지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기 시작할 때 어려움이 시작된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중에서

 

금수저의 딜레마

 

 

지난 몇 년간 정치적 성향이나 나이, 성별, 종교에 상관 없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들끓게한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그 하나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서 특혜를 받고, 이에 자극받은 이대 학생들이 모두 봉기했던 사건이다. 바로 그 이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분노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는 국정농단 사건의 서막이 열렸다. 정유라는 그의 사회연결망을 통해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로 모든 국민의 정서를 자극했다⁠. 박근혜라는 정치권력과 삼성이라는 경제권력이 총동원되어 보살핀 정유라의 존재는, 해방 이후 지속되어온 한국의 보수 기득권의 썩어빠진 가치관은 물론이고, 공고하게 얽혀 있는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드러냈다(*)⁠. 


바로 그 보수 기득권에 맞서,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가져온 세대 역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도 점차 드러나고 있다.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도 고위관료와 정치인 자녀들에 관한 끊임 없는 구설수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 조민씨에 대한 논란이다. 조국 장관의 능력이나 정책적 비전보다, 한국사회는 조민이라는 그의 딸이 지금껏 거쳐온 그 특별한 엘리트 코스에 주목했다. 물론 그 모든 업적을 조민이라는 개인의 능력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관점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 정서는 조국이라는 새로운 민주화 엘리트 정치권력이 그가 비판해왔던 구세력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녀를 교육시켜왔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조국 사태 이후에도 추미애 법무장관의 아들 병역 문제가 논란이 됐고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에 대한 특혜도 의혹 선상에 올랐다. 한국사회는 지금 기득권이 된 사회지도층의 자녀들이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느냐는 총체적 의문에 휩쌓여 있다⁠. 


특권층의 자녀특혜와 같은 일들이, 한국사회에서만 도드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명문대에 자녀를 진학시키려는 부자들은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다⁠4. 부모의 자녀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은 본능이다. 진화심리학은 대부분의 동물과 인간에게 특별히 강하게 나타나는 이와 같은 형질을 혈연선택(kin selection)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이와 비슷한 현상이 국가와 인종, 계급과 종교를 가로질러 나타나는 이유다. 하지만, 부모의 무차별적인 사랑이 사회의 정의와 충돌한다면, 사회는 이를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공정과 정의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 나아가, 비슷한 일이 과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과학자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해 얼마나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


 능력주의, 공정의 함정

 

마이클 영은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체제의 파국을 예고했다. 영 재단(The Young Foundation) 제공
마이클 영은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체제의 파국을 예고했다. 영 재단(The Young Foundation) 제공

특권층 부모의 자녀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지지자들은 완전히 상반되는 반응을 보인다. 특정 정치성향을 지닌 지지자들은, 국민의 정서와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논리는 대부분 그 특권층 자녀가 좋은 학교와 직업을 갖게 된 건, 그의 능력 혹은 실력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정유라의 망언, 좋은 부모를 둔 것도 돈도 능력이라는 논리를 더하면, 현재 대부분의 세계가 겪고 있는 능력주의의 함정이 드러난다. 즉, 우리는 한 사람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반드시 그의 부모나 재력 같은 배경이 아니라 그의 능력이라는 공정한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넘어오면서, 대부분의 사회는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사람은 배경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 아마 누구도 이 상식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능력주의의 함정은 한 사람의 능력이 과연 얼마나 공평한 토대 위에서 발현되었는가에 있다. 즉,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와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출발선이 달랐던 사람을 똑같은 잣대로 평가한다면, 당연히 출발선이 앞서 있었던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능력주의가 지닌 함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능력주의의 함정은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생물학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우생학 논쟁과 똑같은 쟁점을 갖고 있다. 우생학이 생물학의 주류였던 당시, 우생학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한 부류는 적극적 우생학 혹은 음성 우생학(negative eigenics)을 주장하던 이들로, 그들은 나쁜 유전형질을 지닌 이들을 생식에서 배제함으로써 인류의 유전자를 개량하자고 주장했다. 그 반대편에서 소극적 우생학 혹은 양성 우생학(positive eugenics)를 주장하던 이들은 천재나 영재처럼 인류에서 나타나는 좋은 유전형질을 잘 선별해서 인류를 개량하자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양성 우생학자였는데, 그들 중에서도 좀 더 과학적인 인물들은 좌파 우생학이라는 진영을 형성했다⁠.


우파 우생학은 정치적으로 좀 더 보수적인 이들을 부르는 표현인데, 이들은 열등한 인종이나 집단을 도태시켜 인류를 진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의 사상이 나치 독일과 미국 이민법의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좌파 우생학자들은 나치나 미국 이민법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생물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재 인류의 사회적 조건 하에서는, 유전학적으로 완벽하게 유전형질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도 또 지금도 인간사에는 사회적 불평등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좌파 우생학자들은 현재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한 개인의 표현형질이 과연 유전의 결과인지 환경의 결과인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면, 사회에 대한 우생학적 정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좌파 우생학자들의 결론이었고, 따라서 그들은 우생학적 적용을 통해 인류를 전진시키이 위해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발선이 다른 사람을 균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능력주의의 함정은 20세기 좌파우생학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정확히 똑같은 논리 위에 서 있다.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와 과학 - 과학의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메리토크라시의 발흥》 책 표지. 위키피디아 제공

능력주의 혹은 실력주의라는 말은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라는 영국의 사회학자가 1958년 《메리토크라시의 발흥》 혹은  ⁠《실력주의 사회의 도래》라는 책을 집필하며 처음 세상에 내놓은 개념이다. 영은 메리트(merit)라는 영어를 ‘지능+노력(intelligence+effort)’이라고 정의하고, 여기에 체제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덧붙혀 메리토크라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영에 따르면, 메리트크라시는 “능력의 차이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하는 보상과 인정 시스템”이다⁠8. 어떤 국가 혹은 사회체제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도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믿는 체제”는 메리토크라시 사회다. 사회학자였던 마이클 영은 메리토크라시를 민주주의와 같은 수준에서의 정치체제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현대사회가 능력주의를 어떤 절대적인 이념으로 체택하고 있다는 의미다.


마이클 영은 그의 책 《메리토크라시의 발흥》을 논픽션이 아닌 소설로 완성했다. 이 소설의 1부는 ‘엘리트의 부상’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귀족주의가 무너지고 메리토크라시가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을 다룬다. 영이 그리는 2033년은 지능에 따라 선발되고 공과에 따라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이 지배하는 사회다. 철학, 행정, 과학, 사회학 교육으로 무장한 엘리트 집단은 최소 IQ125 이상을 요구받으며, 최고직위인 관료들은 165 이상이어야 한다. 공교육 시스템은 붕괴했고, 엘리트를 위한 교육시스템으로 재편되었다⁠. 소설의 제 2부는 ‘하층계급의 쇠퇴’라는 제목으로 메리토크라시 사회에서 심화되는 양극화와 이로 인한 노동계급의 몰락을 다룬다. 2033년의 사회에선 지능이 높은 사람끼리 결혼해서 자식의 지능을 높이고, 상층계급은 유전자조작으로 자녀의 지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한다. 능력이 모든걸 결정짓는 이 사회는 이럴 바엔 아예 세습주의를 공식화하자는 우익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포퓰리스트 집단이 갈등하고, 여전히 여성이 육아를 담당하는 부조리 속에서 2034년 여성들의 주도로 혁명이 일어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마이클 영은 철저하게 인간이 능력으로만 평가되는 사회가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예측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비극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점점 상층부로 몰리면서 하층민이 사회 무시되고 이로 인한 격차가 심화되어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상층부의 계층은 자신들이 능력으로 현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능력을 정의함으로써 결국은 교육 시스템을 교묘하게 만들어, 능력의 세습을 이루어낸다는 점이다. 마이클 영은 “완벽한 의미에서의 능력주의는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합의된 가치가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혀 그는 “(능력주의와) 상반되는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이다”라고 밝혔다. 즉, 그는 능력주의, 즉 메리토크라시의 궁극적 목표가 결국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위계에 따라 줄세우는 체제임을 간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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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영은 엘리트 교육이 성행하던 20세기 중반 영국사회의 미래를 풍자적으로 비꼬면서, 그런 사회가 초래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해 책을 썼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달리, 메리토크라시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공정을 담보할 수 있는 단어로 오용되기 시작했고, 2001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직전, 그는 ‘실력주의 타도’라는 짧은 칼럼을 통해 자신이 내놓았던 입장을 반대로 악용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마이클 영이 우려하던 사회는 분명히 도래했고, 우리는 능력주의를 내세워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많은 특권층을 매일 뉴스를 통해 목도 중이다. 능력에 의한 평가라는 당연한 상식이 이념이 될 때, 사회는 비참해질 수 있다. 특히 심각한 서열화를 통해 오직 능력주의를 평가의 척도로 떠받드는 과학계야말로, 마이클 영의 경고를 주의 깊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사회가 공정하다고 여기는 능력주의는 과연 과학생태계의 정의를 보장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참고자료

 -https://news.joins.com/article/20750241
-(*) 그리고 역설적으로 정유라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임용절차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기득권 자녀들의 특혜 논란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뉴스는 셀 수 없이 많다. 과거 아들의 병역 면제로 신의 아들이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한 이회창 후보를 기점으로, 최근의 강원랜드 채용의혹 및 각종 은행 채용에 관여한 정치인들의 비리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자녀특혜 공화국이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56765
-금수저라는 말은 한국사회의 능력주의가 초래한 파국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https://news.joins.com/article/18949618
-김우재의 글 “오바마 단백질, 그리고 인종차별”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8%A4%EB%B0%94%EB%A7%88-%EB%8B%A8%EB%B0%B1%EC%A7%88-%EA%B7%B8%EB%A6%AC%EA%B3%A0-%EC%9D%B8%EC%A2%85%EC%B0%A8%EB%B3%84/
특권층의 열생학 https://sisun.tistory.com/category/%EC%83%88%EC%82%AC%EC%97%B0%202013/%5B%EC%B9%BC%EB%9F%BC%5D%20%EA%B9%80%EC%9A%B0%EC%9E%AC%20%EC%B9%BC%EB%9F%BC
-성열관. (2015).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마이클 영 (Michael Young) 의 논의를 중심으로. 교육학연구, 53, 55-79.
- 이시철, '메리토크라시, 현대적 쟁점' 2020년 한국행정연구원 공공리더십 세미나 자료집
- 박남기. (2016). 실력주의사회에 대한 신화 해체. 교육학연구, 54, 63-95.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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