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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재난지원금과 ‘공돈’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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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재난지원금과 ‘공돈’ 심리

2021.02.21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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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대응 지출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는 반세기 만에 최악의 경기 위축을 경험하고 있다. 90%가 넘는 국가가 쪼그라든 국내총생산(GDP)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런 정도의 GDP 감소는 거의 1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란다. 전체 규모만 줄어든 것이 아니다. 불평등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다.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보통 곳간에 여유가 있는 나라라면, 미국이나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선진국일 텐데, 지금 그들의 사정이 더 딱하다. 아무리 봐도 남을 도울 처지가 아니다.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이 다양한 형태로 풀리고 있다. 미국은 2조6000억 ‘달러’(약 2871조 원)를 풀었거나 풀 예정이다. 2조6000억 ‘원’이 아니다. 아시아 주요국이 이미 7조 달러(약 7731조 원) 를 썼단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수백조 원을 썼고, 또 쓸 예정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재난지원금도 있고, 어려운 기업이나 지자체를 위한 지원금도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개발과 보급을 위한 지원, 코로나19 환자 치료 및 방역 등을 위한 돈도 있다. 어쨌든 시장 원리를 벗어나 엄청난 돈이 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풀린 돈은 과연 어디에 쓰일까? 물론 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인간의 본능적 심리와 행동에 관한 진화적 견해에 맞춰 재난지원금의 용처를 짐작해보자. 

 

‘공돈’의 심리

 

겨울 외투 속에서 발견한 5만 원짜리 지폐 다섯 장. 이런 횡재가! 오늘 저녁은 소갈비 파티다. 하지만 공돈이 아니다. 자기 돈인데,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사실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다. 외투 속 돈에는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 이런 막심한 손해가…’라는 억울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 장롱 밑이든, 낡은 책 사이에 꽂아둔 비상금이든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는 손해지만, 심리적으로는 횡재다. 


재난지원금도 그렇다. 나라의 세금 혹은 빚이다.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갈 돈이다. 하지만 걷어갈 때는 빙빙 돌려서 걷어가고, 줄 때는 직접 현금으로 꽂히니 심리적으로는 '공돈'이다. 작년 1차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렸을 때, 일시적으로 한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이유다.

 

자기 돈 주고 한우 사먹으려면 몇 번을 망설이는 것이 보통의 우리다. 결국 세금으로 갚아야할, 자기 돈으로 쇠고기를 사 먹으면서 ‘공짜’라고 여긴 것이다. 뭐, 그래도 다들 기분이 좋았다면 그것으로 괜찮다. 덕분에 고깃집에도 돈이 돌고, 한우 농가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면 말이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잉여 재산을 축적할 방법이 없었다. 음식은 금방 상했다. 은행도 없고, 화폐도 없었다. 그래서 사냥이나 채집으로 많은 식량을 얻게 되면 주변과 나눠 먹었다. 일종의 저축이다.

 

‘남는 음식은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 속에 저장할 수 있으며, 이렇게 기억의 형태로 저장된 음식은 나중에 처지가 바뀌었을 때 주변 사람에게 나의 관대함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극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말이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으로 몽땅 쇠고기만 사 먹을 리 없다. 한두 번이야 유쾌한 마음으로 돈을 쓰겠지만, 매일 파티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사람이 몇 명 이상 모이기도 어렵다. 방역 조치 위반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벌써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우 구매는 좀 자제하고, 조금 더 고민해서 돈을 쓸 것이다. 그런데 고민의 결과는 좀 뜻밖일지도 모른다.

 

하우스 머니 효과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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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넬대 리처드 탈러 교수와 에릭 존슨 교수는 이른바 ‘하우스 머니 효과(House Money Effect)’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카지노 도박꾼의 행동 양상에서 추론한 것인데, 도박에서 딴 돈을 다시 다음 베팅에 ‘몰빵’하는 경향을 말한다. 


탈러 교수는 한 집단에 일정액의 돈을 나눠주고, 도박에 참여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했다. 그러자 70%가 도박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다른 집단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일단 돈을 나눠주지 않은 상태에서, 도박에 참여하지 않으면 동일한 일정액을 주고, 도박에 참여하면 그 일정액이 바로 베팅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43%만 도박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사실 똑같다. 돈을 일단 주고 나서 ‘도박을 할래 말래?’라고 묻든, 돈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그냥 받을래? 도박에 베팅할래?’라고 묻든 그게 그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호주머니로 들어온 ‘공돈’에 대해서는 더 위험한 투자에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돈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경향을 보였다.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지만, 인간은 원래 비합리적인 동물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아주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단돈 100만 원이라도 지원금을 받으면 꼭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경제학적' 정답이다. 당장 쓸 곳이 없다면, 은행에 안전하게 저축해야 한다. 언제 코로나19 상황이 끝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한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모르긴몰라도, 작년 재난지원금의 상당 부분은 주식이나 부동산 혹은 더 위험한 투자에 쓰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복권이라든가... 실제로 2020년에는 하루에 130억 원의 로또 복권이 팔렸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2019년에 비해 거의 10% 증가했다. 다른 복권도 판매가 상당히 늘었다. 돈에는 이름표가 붙지 않으므로 재난지원금이 복권 구매에 쓰였다는 물증은 없다. 하지만 상당한 심증이 간다. 로또 복권의 수익금은 정부 부처에서 나눠서 관리하니, 적지 않은 재난지원금이 다시 정부 곳간으로 들어간 셈이다. 

 

생애사 이론과 공돈 효과가 만나면?

 

어떤 때는 아주 높은 수준의 인내심을 보인다. 그러나 어떤 때는 잠시도 참지 못한다. 이러한 모순은 인간이 원래 변덕스러운 존재라서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맞춰가면서 행동하는 편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나 공무원은 좀처럼 모험적인 업무를 추진하지 않는데, 원래 게으른 사람이 교수나 공무원이 되기 때문이 아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나는 여태껏 비전임 교원으로 지내고 있는데, ‘만약 전임교원으로 발령만 받으면, 정말 열심히 연구할 것이다’라고 매일밤 잠에 들 때마다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정년을 보장받으면, 분명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장담할 수 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더 위험하고 모험적으로 행동한다. 펀드매니저는 좀처럼 정년을 보장받기 어렵다. 만약 정년을 보장해준다면, 죄다 국채만 매입할 것이다. 펀드매니저의 야심을 극대화하려면, 성과에 따라 역동적으로 해고하고 또 채용해야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털이 뭉텅뭉텅 빠지겠지만, 일부는 믿을 수 없이 큰 모험적 수익을 얻을 것이다.


유기체 대부분은 장기간의 안전하고 풍요로운 환경을 기대할 수 없다. 금세 개체 수가 늘어나고, 경쟁이 격화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유기체의 행동은 단기적 투자에 더 편향된다. 내일 굶어 죽을 수도 있고, 모레 잡아먹힐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사냥하고, 당장 번식해야 한다. 만약 환경이 더 척박하고 가혹하다면, 더 빠른 생애사 전략을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경제학적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러한 행동 전략은 별로 현명하지 않다. 현대 사회는 은행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연금도 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과거처럼 위험하지도 않고, 굶어 죽거나, 사자에게 잡아먹힐 가능성도 아주 낮다. 하지만 아주 최근에, 그것도 일부 국가만 이뤄낸 일이다. 우리 마음은 여전히 석기시대다. 오랜 진화사를 통해 ‘위험한 상황이라면, 더욱 위험한 전략을’이라는 인지적 경험칙이 마음 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 유행은 우리의 삶을 순식간에 전근대 사회로 돌려놓았다. 제대로 된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년 말까지는 없었다. 오로지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존해서 감염병에 대항했는데, 물론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엄청난 규모의 재난지원금이 풀렸다.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느닷없이 입금된 공돈이다. 이제 이 돈을 어디에 쓸까?

 

전통적인 경제적 인간관에 입각하면, 우리는 ‘공돈’을 활용해 빚을 줄이고, 급한 불을 끄고, 남는 것은 미래를 위해 저축할 것이다. 그러나 진화적 인간관에 의하면, 우리는 ‘공돈’을 활용해 주변 친구와 파티를 벌이고, 복권을 사고, 주식을 살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영끌’ 대출을 받아 더욱 더 위험한 투자를 감행할 것이다.


진화적 공공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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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하버드대의 세라 솔닉과 데이비드 헤민웨이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널리 알려져 수없이 인용된 연구다. 참여자는 두 사회 중 하나의 사회를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은 2만5000달러를 벌고, 나는 5만 달러를 버는’ 사회다. 두 번째 사회는 ‘다른 사람은 20만 달러를 벌고, 나는 10만 달러를 버는’ 사회다. 사람들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어 했을까? 놀랍게도 첫 번째 사회였다. 


우리는 그냥 잘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남보다’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수입이 반으로 줄더라도, 주변 사람보다 더 부자라면 만족한다. 반대로 수입이 많아도, 주변보다 가난하다면 우울해진다. 물론 당장 배를 곯을 정도의 절대 빈곤이라면, 이러저러한 상대적 빈곤 따위를 따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만해지면, 그때부터는 경쟁이다. 전경련 신년 모임에서도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 재벌이지?’라며 속상해하는 기업 총수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득 수준이 아니라, 불평등이다(최소한의 소득만 보장된다면 말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당장 줄어든 수입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비트코인이다, 테슬라다, 게임스톱이다 하면서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다. 이들의 대박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봐야 하는 심리적 고통이다. 바로 이때,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손에 쥐어진 ‘공돈’이 어디에 쓰일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재난지원금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실은 공돈이 아니다. 우리가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힘들게 나눠 갚아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만든 돈이다. 그러나 진화적 측면에서 보면, 그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갈 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과연 납세자로서의 우리는 이에 동의한 것인가? 세금으로 복권을 사는 것을? 국채를 발행해서 결국 비트코인을 사는 것을? 


진화적 공공정책은 오랜 진화사를 통해 빚어진 인간의 심리가 현재의 환경과 맞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모두에게 돈을 나눠주고, 그 다음에는 다들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지원금을 사용할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곤란하다. 너무 순진한 가정이다. 차라리 건강보험료를 대납해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니냐고? 그러나 의도가 순수하다고, 결과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만약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게임 한 판만 더 하고 공부하겠다'는 자녀의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인간을 사랑한다면, 인간 본성의 합리성을 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판단은 불완전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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