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한국 과학자 사회의 불평등에 대하여

통합검색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한국 과학자 사회의 불평등에 대하여

2021.03.12 09:48

“왜 비슷한 능력과 배경을 가진 과학자들이, 경력의 후반기로 갈 수록 연구결과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될까.  이에 대한 고전적인 답변은 ‘마태 효과’라는 것이다. 좀 더 빨리 성공할수록, 미래에 더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는 마태 효과가 실제 과학계의 연구비 선정과정에서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수행했다. 우리의 연구결과는 연구비 선정결과의 문턱 바로 위에 위치하는 과학자들이 문턱 바로 아래 위치하는 과학자들보다 무려 두 배 이상의 누적적 성공을 거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두 과학자 그룹의 연구비 심사결과 점수는 거의 비슷했지만, 결국 이런 큰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비 선정에서 실패한 과학자들은 다른 연구비 기회조차 그만두게 되고, 이런 참여의 부재는 결국 마태 효과로 나타나게 된다.” -‘과학연구비에서의 마태효과’ 중에서

 

과학계의 양극화와 불평등 그리고 계량지표

 

이전 글들에서 우리는 이미 과학계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마틸다의 유리 천장과⁠ 마태 효과로 인해 나타나는 주변국가 과학자가 겪는 차별, 그리고 과학계에 만연하고 있지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인종차별에⁠  대해 알게 되었고, 현대사회의 과학생태계에서 이런 불평등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계의 양극화와 불평등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구조적으로 자리잡았고, 대학과 정부 그리고 학술지라는 삼각동맹으로 인해 과학연구는 철저하게 비즈니스 논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대학의 상업화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현상이고, 이제 과학연구 또한 철저한 자본주의적 논리에 잠식되어 가고 있다는건, 과학생태계에 발을 딛은 과학도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처절한 현실이다.

 

대학의 상업화가 창조해낸 풍경 중 하나는 평가지표라는 지옥이다. 특히 과학계는 다른 분야들보다 훨씬 일찍 계량적 평가지표를 과학자의 업적평가에 도입했다. 과학계에서 과학자의 업적은 과학자가 출판한 논문의 갯수와 해당 논문이 출판된 학술지의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영향력지수(IF), 그리고 논문에 실린 저자의 수 등으로 측정된다. 대학이 상업화되고 직업훈련소로 전락하면서, 이런 학술지 논문 외에 특허의 갯수 또한 과학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계량적 평가지표로 자리잡았다. 과학연구를 계량화하는 이런 시도는 결국 과학계를 소수의 엘리트가 독점하는 양극화로 몰아넣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5%의 과학자가 전체 논문의 약 50%를 발표하고 있고, SCI에 속한 저널에 발표된 논문 중 70%의 논문이 단지 한 번 인용된 반면, 0.009%의 논문만 100회 이상 인용된다.” 박희제 경희대 교수는 “소수의 엘리트 과학자들은 과학자사회의 명예와 자원의 분배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2017년 울리히 매터 스위스 장크트갈렌대 교수가 발표한 '의생명학계의 엘리트에 대하여: 과학적 지식 생산에서의 불평등과 정체상태'라는 논문은 1985년에서 2015년까지 미국립보건원(NIH)에서 수행한 연구비 평가와 그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계의 불평등을 분석했다. 

 

매터 교수에 따르면, 1985년 이후 연구비 불평등은 심각하게 증가했고, 처음부터 연구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상위연구자들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터는 이 현상을 ‘정체(stasis), 즉 ‘계급의 유동성 저하’라고 부른다. 연구비 선정의 결과는 과학기술정책 과정에서 도입된 경제학자들과 정책관료들의 계량적 지표와 정확히 일치하는 경향성을 나타내는데, 이런 계량지표들의 도입이 초래하는 가장 비극적인 결과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연구비를 독점하는 것이다. 그 엘리트는 단지 과학자 개인이 아니라 특정 연구기관 혹은 연구분야에 속한 집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의생명과학 분야에 밀집되어 있는 연구비와 연구자들을 고려해볼 때, 이런 불평등의 고착화는 의생명과학 연구의 다양성을 현격하게 떨어뜨린다고 저자들은 결론짓는다

 

전세계의 과학생태계, 특히 의생명과학계는 역사상 유래 없는 연구비공황과 극심한 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사회가 입는 손해는 심각하다. 과학생태계의 지나친 상업화는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되는 과학 연구의 결과물들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상아탑에서 무한경쟁에 갇힌 과학자들로 인해 과학자들의 전문지식과 조언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들에서 과학자들을 소외시킨다. '황우석 사태'로 상징되는 연구성과 부풀리기와 논문조작, 가짜학회와 가짜학술지 논란으로 야기된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연구윤리의 실종은, 단순히 과학생태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과학연구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도덕적 해이는 국가의 장기적인 미래전략에 큰 실패를 안길 수 있고, 국가간 경쟁에서 한국이 도태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 불평등과 경쟁으로 교란된 과학생태계에서, 과학자는 사회적인 책임을 완수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망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 그건 한 국가가 감수해야 하는 큰 손해가 될 수 있다.

 

한국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그리고 과학계의 마피아들

 

픽사베이 제공
픽사베이 제공

박희제 교수와 김명심 박사는 2011년 “한국 과학자의 경력초기 생산성과 인정의 결정요인들: 대학원 위신과 지도교수 후광효과의 영향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한국 과학자 사회에서 나타나는 마태 효과를 검증했다. 이들에 따르면 한국의 “과학자 사회는 생산성과 보상 양 측면에서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다.” 한국 대학과 대학원이 지닌 위신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 과학자의 학위기간과 학위 후 3년이라는 경력초기의 연구 생산성과 동료 인정의 차이를 낳는 요인들을 살펴보면, 출신 대학원의 위신이 높을수록, 국내 대학원보다 해외 대학원 학위자일수록 박사 후 3년간의 생산성이 높고 동료들에게 더 인정을 받는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의 극소수 상위 대학 대학원 출신은 해외 대학원 출신과의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국내 기타 대학원 학위자의 생산성과 인정은 크게 뒤쳐져, 현격한 양극화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불평등과 양극화의 가장 주요한 요인은 상당부분 지도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한 후광효과에 기인하고, 지도교수의 후광효과는 한국 대학원보다 해외 대학원 출신에게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한국 과학자 사회는 해외대학원, 특히 미국 유학파라는 특수한 맥락에 의해 계층화가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다양성을 잃고 있는 셈이다. 

 

김명심 박사는 2008년 “한국 대학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라는 주제로 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의 서두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된 과학생태계의 계층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회체계들 중에서도 고도로 합리화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과학체계 역시 불평등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를 생성∙유지시키는 기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과학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이고 가치중립 적인 전통적인 이미지로 인해 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들의 사회는 다른 사회 분야들과 달리 고도로 합리화되고 자기검증이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라는 믿음이 과학계 내부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수행한 결과에 대한 인정은 과학적 업적 그 자체의 질에 따라 평가되며 어떤 개인적 특성과 사회구조적 영향도 배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자 사회에서는 학연이나 성별과 같은 귀 속적 특징에 따라 과학적 업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귀속 적 특징으로 인해 과학자로서의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보편화된 것이다.

 

김 박사는 과학자 사회 또한 계층화와 불평등이라는 근대사회의 병리현상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논문은 서구의 경험적 연구들에서 증명되었던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 현상이 한국의 과학자 사회에서도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만약 한국 과학자 사회에 계층화 현상이 존재한다면 계층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과 그로 인한 한국 과학자 사회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이미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처럼 대학의 서열체계가 확고한 국가일수록, 과학계에서도 마태 효과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공동 연구가 일반화되어 있는 현대 과학의 특성 때문에, 지도교수와의 공동연구는 신진연구자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에 대학서열화와 학벌 그리고 교수들의 이기주의를 더해보면, 한국의 과학생태계가 얼마나 심각한 불평등과 계층화의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출처 ′한국 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김명심)′
출처  : 한국 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김명심,2008)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김명심 박사의 연구 결과는 한국 과학자 사회의 뿌리 깊은 계층화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흔히 학계 마피아라고 말하는 지도교수의 영향력과 대학서열은⁠, 한국 과학자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따라서 이 연구의 분석 결과는 대학의 서열체계가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가설을 지지한다. 생산성과 인정의 불평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의 원인이 대학원의 위신이나 지도교수의 후원과 같은 후광효과에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학 과학자 사회의 보상체계는 보편주의보다는 특수주의 요인에 의해 차등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서열체계가 고정되어 있는 한국의 대학 과학자 사회의 구조 속에서 대학 과학자들은 초기의 구조적 위치로 인해 이후의 생산성과 인정의 차이를 감수하게 된다. 만약 현재의 대학 서열체계가 이후에도 지속된다면 과학자들 은 초기의 구조적 위치에 따라 이후에 받게 되는 보상의 범위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위신이 높은 대학원 출신의 과학자들은 그보다 위신이 낮은 대학원 출신의 과학자들보다 많은 인정과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참고자료

-Bol, T., de Vaan, M., & van de Rijt, A. (2018). The Matthew effect in science funding.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5(19), 4887-4890.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마틸다의 유리천장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마태 효과와 기생충: 과학자사회의 불평등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주변국가 과학자가 직면하는 삶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계의 인종차별

-김우재의 글, [야! 한국 사회] ‘학술 시장’의 부패, 한겨레기사를 참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4519.html#csidxba6e9ebf81cbeb2955c10fdd52f572f

-김명심, & 박희제. (2011). 한국 과학자의 경력초기 생산성과 인정의 결정요인들: 대학원 위신과 지도교수 후광효과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5(5), 105-142.

-Katz, Y., & Matter, U. (2017). On the biomedical elite: Inequality and stasis in scientific knowledge production. Berkman Klein Center Research Publication, (2017-5).

-김명심, & 박희제. (2011). 한국 과학자의 경력초기 생산성과 인정의 결정요인들: 대학원 위신과 지도교수 후광효과의 영향을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45(5), 105-142.

-김명심. "한국 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2008. 서울

-김명심. "한국 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2008. 서울

-김우재, [야! 한국사회] 사이언스 마피아,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0327.html

-김명심. "한국 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2008. 서울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6 + 7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