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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고교학점제는 20년 묵은 낡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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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고교학점제는 20년 묵은 낡은 제도

2021.03.17 08:00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19년 4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경기도 수원시 고색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수업내용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지난 2019년 4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경기도 수원시 고색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수업내용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2025년부터 고등학교에 ‘학점제’가 전면 도입된다. 누구나 원하는 교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에게 적성과 진로에 맞는 학업계획을 이수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녹녹치 않다. 극도로 경직된 교육과정, 학교 운영, 대학입시를 한꺼번에 개혁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학점제가 일반고의 역량 강화와 서열 해소의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어설프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교과 선택권을 강조하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년 전인 2002년부터 고등학교에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의 핵심 목표가 바로 ‘선택형’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어 고질적으로 고착화되어 버린 문과・이과의 구분을 철폐하는 대신 교육의 다양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선택형 교육과정의 틀은 지금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학점제’는 현재의 ‘선택형 교육제도’의 포장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그림의 떡이 돼버린 선택권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교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문과·이과의 구분은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고, 학생들의 학력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떨어져버렸다.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 공대에 진학하고, 문과를 선택한 학생이 의대에 진학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아랍어가 수능의 인기 과목이 되기도 했다. 


운영이 극도로 경직된 학교에서 학생들의 실질적인 ‘교과 선택권’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물리’ 전공의 교사를 확보하지 못한 학교의 학생들이 ‘물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다른 학교의 물리 교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교육부의 ‘클러스터’도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이동을 할 수도 없고, 교사가 학생들을 찾아다닐 수도 없다. 사실은 학급별 운영을 위해 설계된 학교 안에서의 선택권도 보장해주기 쉽지 않은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제도적으로 ‘학점제’를 선포하기만 하면 현장에서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교육부의 인식은 지나치게 안이하다. 실제로 제도적으로 사라져버린 문과・이과 구분이 학교 현장에서는 시퍼렇게 살아남아 있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핑계로 ‘가’형과 ‘나’형으로 구분된 수능이 학생들에게 ‘문과’와 ‘이과’의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문과’와 ‘이과’로 구분되어 있는 현실에서 문・이과 구분 철폐는 비현실적인 꿈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문과・이과의 구분이 단순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다. 이제는 ‘문송하다’(문과라서 죄송하다)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더욱 강화되고 말았다.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교과 이기주의도 심각하다. 선택형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학과의 교수들이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 문제였다. 결국 ‘과목 쪼개기’가 학생들의 선택을 유도하고, 교과 담당 교사의 증원을 보장하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과목 쪼개기’의 현실은 참담하다. ‘국어’가 ‘국어・국어생활・화법・독서・작문・문법・문학’으로 쪼개지고, ‘수학’이 ‘수학・실용수학・수학I・II・미분과적분・확률과통계・이산수학’으로 갈라졌다. 심지어 ‘도덕’도 ‘도덕・시민윤리・윤리와사상・전통윤리’로 나눠졌다. ‘사회’는 ‘사회・국사・인간사회와환경・한국지리・세계지리・경제지리・한국근현대사・세계사・법과사회・정치・경제・사회문화’로 늘어났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136단위 이수를 위해 준비해놓은 교과가 무려 73개 과목 430단위나 된다. 대학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선택의 폭이다.

 

고교학점제 운영 모델. 교육부 제공
고교학점제 운영 모델. 교육부 제공

 

적극적인 융합교육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교육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고등학교를 어설픈 ‘전문가’ 양성 기관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국민공통기본 과정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절박하다. 더욱이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편식을 강요하는 ‘선택형 교육과정’이 제공하는 단편적인 지식만으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창조적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생선을 머리, 몸통, 꼬리의 세 토막으로 잘라놓고 어느 것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선택형’이라고 할 수 없다. 생선의 머리만 맛보고, 생선 맛을 배웠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토막 난 교육으로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선택권은 ‘소고기’를 먹을 것인지, ‘생선’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대학이 먼저 변해야 한다. 단과대학과 전공 학과 사이에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칸막이를 쌓아두고 있는 대학의 현실은 절망적인 것이다. 견고한 칸막이 속에 안주하면서 겉으로만 그럴듯한 ‘융합’을 외치는 지식인들의 부끄러운 이중성이 고등학교 교육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교사의 양성 제도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정체불명의 ‘교육학’이 압도하는 획일적인 교사 양성 교육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융합형 교사’를 양성할 수 없다. 고등교육이 부실했던 시절의 교사 양성 제도의 근본적인 혁신이 절실하다. 교육학에 대한 일반 지식보다 전공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상황에서 굳이 별도의 교사 양성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일 수 있다.


고등학교 교과목의 ‘쪼개기’가 아니라 ‘대통합’이 필요하다. 고등학교에서 화법・독서・작문・문법・문학을 구분해서 가르칠 이유가 없다. 한국지리・세계지리・경제지리가 실질적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현대 과학이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수능을 포함한 대학입시의 혁명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해 12월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앞두고 자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해 12월 3일 수험장의 모습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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