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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시간과 공간이 아닌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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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시간과 공간이 아닌 시공간

2021.04.01 18:17
아인슈타인은 한때 시공간의 구조를 다르게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될지 상상하고 상대성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논리와 개연성을 타진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스틸 컷
아인슈타인은 한때 시공간의 구조를 다르게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될지 상상하고 상대성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논리와 개연성을 타진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스틸 컷

'상대성 이론'이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관측자가 이 우주를 똑같이 볼 것인가에 관한 이론이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 여기서 ‘똑같음’의 기준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식의 고전적인 상대론에서는 간단하게 상대적인 속도만큼 더하거나 빼면 움직이는 좌표계에서의 운동도 쉽게 기술했다. 고전 상대론이 기술하는 현상은 우리의 직관적인 경험과 일치한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고전 상대론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똑같음의 기준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똑같으려면 그 현상의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 항상 똑같으면 된다. 이것이 고전적인 뉴턴 역학에서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이다. 서로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좌표계에 대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으로 똑같다. 이는 굳이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암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 온 사실이었다. 


천재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아인슈타인에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물리법칙과 광속이라는 물리상수가 더욱 중요했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상대성이론을 만들 때에는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관측자에게 물리법칙과 광속이 똑같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특수상대성이론의 두 가정이다. 


물리법칙이야 그렇다 치고, 광속이 똑같음의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인슈타인은 고전 전자기학과 자신의 사고실험을 통해 광속은 물리학에서 아주 독특한 지위(모든 관성좌표계에서 항상 같은 값을 가진다는)를 가지고 있음을 간파했다. 달리 말하자면 광속은 우리 우주의 본질적인 속성을 담지하고 있는 물리상수이다. 즉, 광속은 ‘우주 본연의 언어’인 셈이다. 


반면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언어이다. 인간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든 개념들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개념이 우주의 본질을 담지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인간 자체가 우주에서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인식에서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밀려난 것이 벌써 수백 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은 꽤 쓸모가 있어서 적어도 아인슈타인 이전까지는 이 자연과 우주를 과학적으로 기술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우주를 정확하게 기술하려면 역시 우주 본연의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우주를 기술할 때 인간의 언어를 버리고 우주의 언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언어는 바로 광속이었다. 그러니까 똑같음의 기준이 바뀐 것은 인간 중심에서 자연 중심으로 바뀐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광속은 빛의 속력으로, 대략 말하자면 빛이 이동한 거리를 그 동안 걸린 시간으로 나누면 구할 수 있다. 즉, 광속이라는 개념에는 시간과 공간이 함께 들어가 있다. 이는 광속이라는 우주의 언어를 시간과 공간이라는 인간의 언어로 ‘번역’ 또는 ‘해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갈릴레오와 뉴턴 이래 고전물리학이 한 일은 대체로 이런 방식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뒤집었다. 우주를 정확하게 기술하려면 우주 본연의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 즉,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광속을 중심에 놓고 자연을 기술해야 한다. 따라서 시간과 공간으로 광속을 이해할 것이 아니라, 광속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번역’하고 ‘해석’해야만 한다. 광속불변이라는 특수상대성이론의 두 번째 가정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광속 중심의 관점에서 다시 자연을 바라보면 놀라운 일들이 생긴다. 

 

1931년 윌슨 산 천문대를 방문한 아인슈타인(왼쪽)이 후커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52세였다. 동아사이언스DB
1931년 윌슨 산 천문대를 방문한 아인슈타인(왼쪽)이 후커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52세였다. 동아사이언스DB

첫째, 앞서 말했듯이 광속이라는 개념에는 시간과 공간이 함께 들어가 있다. 따라서 상대적인 운동이 어떠하든 광속이 불변이려면 상대적인 운동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따로따로 놀 수가 없고 모종의 방식으로 서로 얽혀들어야만 한다. 이는 고전역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전역학에서는 시간은 시간이고 공간은 공간일 뿐으로 각각은 서로 독립적이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이들은 하나의 ‘시공간’을 형성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 결과 상대성이론에서는 1차원의 시간과 3차원의 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이들이 하나로 합쳐진 ‘4차원 시공간’을 형성한다. 

 

둘째, 그 결과 시간과 공간이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상대적인 운동에 따라 물리법칙과 광속을 항상 똑같이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고전역학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과 절대적인 시간 및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인 운동에 따라 물리법칙(방정식)과 광속이 변했다. 상대성이론에서는 그 반대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움직이는 좌표계의 시간이 늦게 가고 진행방향의 길이가 짧아진다. 고전역학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1초의 간격이 길어진다는 뜻이다. 이를 ‘시간 팽창’이라 부른다. 정지한 사람이 봤을 때 움직이는 좌표계 속에서의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인다. 시간이 팽창하는 정도는 속도의 함수로 주어지는데 광속에 가까울수록 그 효과가 아주 커진다. 반면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느린 속도(광속에 비해)에서는 시간 팽창효과가 미미하다. 

 

시간이 팽창하는 딱 그만큼 진행하는 방향의 길이도 짧아진다. 황당한 SF 소설 같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엄격한 실험과 검증도 모두 통과했다. 예컨대, 소립자 중에 뮤온이라는 입자가 있다. 전자와 모든 물리적 성질이 비슷하지만 질량만 전자보다 200배 남짓 더 무겁다. 뮤온의 수명은 약 백만 분의 2초이다. 뮤온은 우주에서 날아온 입자들에 의해 지구 대기의 상층에서 만들어진다. 고전역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뮤온이 광속(초속 약 3억 미터)으로 날아간다 하더라도 수명이 백만 분의 2초니까 비행거리가 겨우 600미터에 불과하다. 많은 수의 뮤온이 대기 상층에서 만들어지더라도 대부분은 금세 다른 입자들로 붕괴해 버리기 때문에 지표면까지 도달하는 뮤온의 개수는 극히 적다. 실제 실험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뮤온이 지표 근처에서 검출된다. 그 이유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는 뮤온의 시간이 늦게 가기 때문이다. 즉, 지표면에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는 이미 백만 분의 2초가 지났더라도 비행 중인 뮤온의 시계는 천만 분의 2초가 지났을 수도 있다. 그 결과 실제 뮤온은 고전역학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다.


한편 비행 중인 뮤온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될까? 뮤온과 함께 움직이는 좌표계에서는 뮤온은 정지해 있고 지면이 뮤온에게 빠른 속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좌표계에서는 뮤온의 시간이 팽창되지 않는다. 뮤온은 100만분의 2초의 수명을 살 뿐이다. 다만 뮤온과 지면 사이의 길이가 수축된다. 그 결과 뮤온은 짧은 생을 살면서도 지면 가까이에 도달할 수 있다! 지구 대기의 상층에서 만들어진 뮤온이 지표면 가까이 도달할 수 있다는 결과는 똑같지만 그 과정은 지구 표면에 정지한 좌표계와 뮤온과 함께 움직이는 좌표계에서 전혀 다르다. 이처럼 상대성이론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이 좌표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는 물리법칙과 광속이 어느 관성좌표계에서나 똑같아야만 한다는 조건을 만족하기 위한 대가이다. 

 

빛원뿔(lightcone).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수식(오른쪽 박스)을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한 그래프로 그리면 기울기가 빛의 속력(c)인 원뿔 두 개가 머리를 맞댄 모양이 나온다. 이 그래프는 빛에 의해 만들어진 원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빛원뿔’이라고 불린다. 어떤 물리적인 사건이 원점(현재)에서 일어났을 때 세 영역 중 한 곳을 향하게 된다. 빛보다 느리게 진행될 경우 ‘시간꼴 영역’으로(하늘색 화살표), 빛이(또는 빛과 같은 속도로) 운동할 경우엔 ‘빛꼴 영역’으로(주황색 화살표) 빛보다 빠르게 진행될 땐 ‘공간꼴 영역’으로 향한다(회색 화살표). 이중 시간꼴 영역과 빛꼴 영역으로의 진행이 우리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이며, 이때를 원점의 사건과 나중의 사건이 인과 관계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
빛원뿔(lightcone).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등장하는 수식(오른쪽 박스)을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한 그래프로 그리면 기울기가 빛의 속력(c)인 원뿔 두 개가 머리를 맞댄 모양이 나온다. 이 그래프는 빛에 의해 만들어진 원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빛원뿔’이라고 불린다. 동아사이언스DB

특수상대성이론의 이런 기묘해 보이는 결과들 때문에 예전부터 이와 관련한 수많은 ‘역설’들이 있었다. 이들 역설의 대부분은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쌍둥이 역설이다. 상황은 이렇다. 쌍둥이가 있는데 한 명(갑이라 하자)은 지구에 남고 다른 한 명(을이라 하자)은 우주선을 타고 멀리 있는 별까지 우주여행을 한 뒤에 지구로 다시 돌아온다. 누가 나이를 더 먹을까? 갑의 입장에서는 을이 움직였으니까 을이 나이를 덜 먹는다. 반면 을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가만히 있고 갑이 지구와 함께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으니까 갑이 나이를 덜 먹는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둘이 지구에서 다시 만났을 때 누가 더 나이를 먹었을까 하는 것이 쌍둥이 역설이다. 


쌍둥이 역설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갑과 을의 관계가 전혀 대칭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을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좌표계와 지구로 가까워지는 좌표계는 서로 다른 관성좌표계이다. 을이 멀리 있는 별을 찍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순간 을은 새로운 좌표계로 갈아 탄 셈이다. 반면 갑은 지구에 계속 머물러 있었으니까 하나의 좌표계에만 남아 있었다. 갑과 을의 이런 차이 때문에 둘은 서로 대칭적이지 않다. 수리적으로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을이 나이를 덜 먹는다. 모순이나 역설은 없다. 

 

과학동아DB
과학동아DB

길이수축과 관련된 역설도 있다. 상황은 이렇다. 10량짜리 고속철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터널의 길이는 열차 5량의 길이와 똑같다. 지면에 서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속철이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진행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다. 따라서 고속철이 충분히 빠른 속도로 달린다면 10량짜리 고속철이 열차 5량 길이에 해당하는 터널 속에 완전히 들어갈 수도 있다. 고속철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 좌표계에서는 고속철이 가만히 있고 터널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고속철에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터널의 길이가 더 짧아진다. 그 결과 고속철이 터널 안에 완전히 다 들어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 두 좌표계에서 서로 다른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일까? 누구의 관측이 옳을까?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이 또한 모순이나 역설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현상을 목격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지면에 대해 정지한 좌표계에서는 고속철의 앞끝이 터널의 출구에 이르고 고속철의 뒤끝이 터널의 입구에 이르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고속철의 좌표계에서는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정지좌표계에서나 운동하는 좌표계에서나 광속은 항상 똑같기 때문에 정지좌표계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이 운동하는 좌표계에서는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 동시성을 확인할 물리적 신호인 빛은 좌표계와 상관없이 항상 일정하게 움직이는데 동시성을 따져야 할 사건은 좌표계에 따라 정지해 있거나 움직이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물리법칙과 광속이 변하지 않는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3살 때의 아인슈타인. 위키피디아 제공
3살 때의 아인슈타인. 위키피디아 제공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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