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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통제감 환상, 의지력처럼 보이는 잘 포장된 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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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통제감 환상, 의지력처럼 보이는 잘 포장된 객기

2021.05.01 09:17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통제감의 환상'이란 내 힘으로는 사실상 통제할 수 없는 일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는 것을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얼마 전 현대인의 직업병 척추와 경추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와중에 디스크도 의지력으로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깐 멈짓한 일이 있다. 그러고 보면 정신 질환을 포함해서 알러지, 심지어 암 등 대부분의 질병에 있어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무슨 근거에선지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거나 걸려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인간 특유의 오만한 생각이다. 인간이 뭐 대단한 존재라고. 인간의 정신력도 물론 때로는 꽤 멋진 일을 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보기에 대단한 것이지 생노병사 같은 자연의 법칙이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뿐이다. 인간이 예쁘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물의 결정이 그것도 우리 인간 눈에만 예뻐보이는 모습으로 바뀔리 없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미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물론 '통제감의 환상(illusion of control)', 즉 내 힘으로는 사실상 통제할 수 없는 일도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는 것, 예컨대 같은 주사위도 내가 던지면 반드시 6이 나올 것 같다거나 내가 응원하는 팀은 꼭 이기거나 질 거라고 생각하는 등 자신의 통제력을 신력에 가깝게 과장해서 느끼는 현상은 흔히 나타난다. 이런 환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또 적지 않은 학자들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잘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통제감을 가지면 되지 왜 허무맹랑한 ‘환상’까지 가져야 하냐며, 이는 독이 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특정 음식을 조심하는 식이요법을 열심히 하겠다거나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하는 등 의지력으로 어느 정도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 있는, 건강한 자신감의 기반이 된다. 하지만 특히 ‘건강’이나 ‘안전’ 문제에 있어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까지, 그것도 생각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일례로 최근 한 지인이 발목 상태가 매우 나빠서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사실 그간 여러번 삐고 다치고도 등산을 강행하는 등 발목 건강에 반하는 일은 모조리 하고 치료를 잘 받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본인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고 내게는 그것이 마치 "발목을 그렇게나 괴롭혔는데 어떻게 발목 상태가 나쁠 수 있지" 같이 앞뒤가 맞지 않는 질문처럼 들렸다.

 
일반적인 생명체의 뼈와 관절은 충격을 받으면 부러지기도 하고 잘 회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발목만큼은 티타늄으로라도 만들어져있는 양 절대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상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이 되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충격도 잠깐이었고 이내 의사가 뭘 모르고 한 얘기일 수 있다거나 검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 생각보다 아프지 않으니까 등산은 다녀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발목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같은 말을 했는데 그간 자신의 발목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음을 소상히 밝혀주는 증거들 앞에서도 그런 믿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 그간 의지력이 발목을 지켜주지 못했음이 자명한데도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나의 소감은 사뭇 달랐다. 적시에 치료를 받았더라면 가벼운 치료로도 금방 나았을 것을 자신은 괜찮다며 미루고 미루다가 병을 있는대로 키워 결국에는 가장 무겁고 길게 치료 받는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였다. 병원에 가기 싫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이 다치고도 병원을 가장 자주, 오래 다니고 있었디 때문이다.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다가 다친 사례가 있는 것처럼, 자신을 믿더라도 ‘믿을만한’ 부분을 잘 파악해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것을 ‘의지력’이라고 포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이 하면 ‘객기’라고 부를만한 일을 자신이 하면 의지력이라고 포장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책 《자아의 저주》에는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정신적 힘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따금씩 내가 오만하고 무모한 생각들로 내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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