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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개발하느냐고 묻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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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개발하느냐고 묻지 마시오”

2016.01.26 18:00
<18> 오영국 국가핵융합연구소 KSTAR연구센터 부센터장


무기 개발하느냐고 묻지 마시오.”


그의 첫 마디에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빵’ 터지고 말았다. 오영국 국가핵융합연구소(NFRI) 책임연구원에게 ‘핵융합연’으로 사행시를 부탁하자, 그가 풀어낸 말의 첫머리부터 대박 조짐이 보인다. 그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그간 받아온 황당한 오해에 대해 속시원히 해명하고 싶어하는 의지가 묻어났다. 사행시의 나머지는 처음과 다르게 사뭇 진지했다.


합의 원천, 희망에너지를 개발하는 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구소 중의 연구소입니다.”

  

오영국 NFRI 책임연구원은 "장비보다 사람"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소신있게 밝혔다. - 대전=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제공
오영국 국가핵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장비보다 사람”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소신있게 밝혔다. - 대전=전승민 기자 enhanced@donga.com  

● ‘장비보다 사람’… 실수에서 교훈을 얻다


올해 50세가 되는 오 연구원을 지난달 30일 대전시 유성구 자운동에 위치한 고깃집 ‘김삿갓’에서 만났다. ‘고기를 속이면 삼대가 망한다’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대전의 맛집 중 하나다.


오 연구원은 2007년 개발된 한국형 핵융합연구로 KSTAR의 연구 책임자 중 한 명이다. 개발 당시 KSTAR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용하지 않던 초전도 자석을 접목해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완전 사고뭉치였어요.”

 

무심코 오 연구원이 내던진 한 마디에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뒤 던지려던 질문을 바로 꺼내들게 만들었다. 여태까지 친 사고 중 제일 난감했던 건 뭘까. 사행시 만큼이나 화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의 유쾌한 성격 덕분이다.


“고등학생 시절 소금(NaCl)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 염산(HCl)에 나트륨(Na)을 집어넣었다가 염산을 뒤집어썼다”고 운을 뗀 그는 가장 진땀을 뺀 사고로 연구원에 갓 입사해 저질렀던 해프닝을 떠올렸다.


“독일에서 강력한 초전도 자석이 들어간 실험 장비를 수입해왔어요. 설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제 부주의로 쇠로 된 줄자가 장비 안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어요. 설치가 완료되기 이전이라 독일 회사에서 모든 책임을 졌지만 입사 바로 다음 해에 벌어진 일이라 수습하느라 정말 마음 고생이 심했죠.”

 

국내에 처음 들여온 장비인 만큼 자성이 그렇게 강력하리라고는 오 연구원뿐 아니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 책임을 물어온다면 딱히 변명 거리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책임자였던 선배도 제게 아무런 추궁을 하지 않으셨어요. 만약 호되게 혼이 났다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사람인지라 반발심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분은 그러지 않으셨죠.”

 

덕분에 오 연구원은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었고 ‘장비보다 사람’이라는 교훈까지 덤으로 얻었다. ‘고가의 장비를 어쩌나’ ‘책임은 누가 지나’ 같은 문제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요즘에도 이런 마인드로 후배들을 대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정말 그런지는 후배들이 더 잘 알겠죠? 하하.”

 
● ‘평화의 에너지’ 핵융합, 그리고 국격


고등학생 시절 생명공학에 매료됐던 오 연구원은 원자핵공학과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20년 후면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가 될 것”이란 담임 교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이 얘기가 1984년의 일이었으니, 20년을 훌쩍 넘어 32년이 지난 지금도 핵융합 발전 상용화를 향한 길은 멀기만 하다.


“핵융합 에너지는 인류가 얻어야 할 ‘최후의 에너지’입니다. 최근 각광 받는 신재생 에너지도 사실 모두 태양이 만들어낸 핵융합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전히 언제 상용화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핵융합 연구는 이미 선진국들의 첨단 기술 각축장이 됐다. 2040년대 상용 핵융합발전소 건설을 위한 원천기술 확보를 목표로 하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하는 데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가 뛰어든 것도 최후의 에너지를 얻는 데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다.


오 연구원은 오늘날 선진국들이 화석에너지가 바닥난 훗날, 에너지 문제로 허덕일 개발도상국과 제3세계에 새로운 불꽃을 전수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불꽃은 원자력보다는 핵융합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 오 연구원의 주장이다.


“화석에너지는 언젠가는 분명히 동이 납니다. 그에 대한 대안이 현재 사용 중인 원자력과 핵융합인데, 우라늄을 이용하는 원자력은 핵무기로 변질될 위험성이 큽니다. 반면 핵융합 기술만을 이용해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즉, 핵융합 에너지가 국제 사회에서 핵 확산을 막는 동시에 에너지 불균형을 막을 수 있는 평화적 에너지라는 뜻이다. 어쩌면 사행시의 첫 행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핵융합 연구가 우리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명품’과 비슷하다는 비유를 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KSTAR는 물론 세계가 함께 연구하고 있는 ITER에는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들어갑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 연구가 미래에 대한 투자인 것을 알기에 발을 빼지 않아요. ‘미래를 위해 우리나라는 이 만큼 투자할 수 있다’ 즉 여유가 있다는 뜻이지요.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그보다 더 높은 기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연구이기 때문에 핵융합 에너지 연구는 충분히 나라의 ‘명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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